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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쓰는 너와 나 아는 적당한 사이'에 부치는 편지: 개인전 ⟪아들의 시간 1/2⟫ 전시 서문, 김미정, 2022
*신경 쓰는 너와 나 아는 적당한 사이: 글의 제목은 《아들의 시간》에 출품된 작품 제목을 조합한 것임
라포르
『어른의 문답법』(2022)이라는 책을 선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평화로운 대화술로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과 관련 사례들을 설명하는 책이었어요. 이 책이 전 목차마다 계속 강조하는 지점은 경청하기였는데, 이렇게 친밀감을 형성하고 경계심을 완화하는 과정을 심리학에서는 라포르rapport라고 하더군요. 논쟁의 소지가 큰 대화를 꺼내기 전 상대방과 라포르부터 형성하라는 건 이러한 책들이 내세우는 주된 주장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저는 저의 라포르적 시도가 상대에게 효과적이지 않다면, 혹은 상대방이 나에게 라포르를 형성할 의지나 생각이 없다면 어찌할지를 고민하며 책을 덮었어요. 각자의 배려와 친절함이 같은 방향을 본다는 건 늘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물론, 그걸 결국엔 설득해 내어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이루는 게 현대인이 추구하는 성공의 방향이며 그것이 곧 이 책이 소비되는 이유겠지요. 그럼에도 종종 관계에서의 우위를 차지하거나 선점하는 일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과제이자 성취임을 강조하는 이미지와 글을 보는 게 참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저도 그걸 원하기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겠지만, 결국 끝까지 읽지 않는(못한) 방어적인 선택을 한건 나름의 인생살이를 통해 얻게 된 일종의 포기의 방식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박지혜 작가의 작품이 관객과 형성하는 거리감에 이끌려요. 어떤 작품들은 하고픈 말이 너무 많아 부담스러울 때가 있는데, 작가의 작품은 늘 “이정도가 적당하지 않겠어요”라며 적정선을 먼저 제안하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그게 흥미로웠던 건 매몰찬 홀대여서가 아니라 굉장히 드물게 조심스러운 발화 방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내가 속한 세계에서 맺는 관계라는 건 라포르의 마음과 시도로만 해결될 수 없는 것처럼 매우 복잡 미묘한 미로 속을 탐험하는 일인데, 작가는 그 미로에서 얻게 된 균열의 언어와 시점을 들여다보려는 것 같았거든요.
근대문학관에서 진행되는 개인전 《아들의 시간》 또한 작가가 사용해온 언어들과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들의 시간》은 인천이라는 지역 리서치에서 시작하지만, 일반적으로 리서치 형식의 전시들이 가지는 모습과 내용을 발견하기는 사실 쉽지 않아요. 저는 종종 로컬이라는 이름으로 기획되는 프로그램들이 지역의 서사를 신화화하거나, 의도치 않게 중심과 밖이 어디인지를 구분하는 기회가 된 경우를 알아요. 그런데 《아들의 시간》에는 지역에 대한 정의도, 판단도, 심지어는 주민의 인터뷰 같은 데이터화된 결과물도 존재하지 않아요. 시골의 넉넉한 인심이라며 낭만을 역설하거나 혹은 지역소멸의 심각성을 운운하는 대신 그저 각 작품에는 작가 자신이 살던 곳과는 다른 장소와 공간을 방문하며 지각한 분절된 삶과 그 충돌의 감정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어요. 그렇기에 오히려 각 작품들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어요. 선택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생의 형태, 떨어져 있는 부모와 자식이 혹은 세대가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며, 신경 쓰며 어색하게 나누는 인사,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공동체라는 이름이 가진 팽팽하고도 느슨한 모양 등이 조각에 얹혀 있어요. 아, 지금 당장 보지 못했더라도 괜찮아요. 어쩔 수 없이 만나고, 알게 될 수밖에 없거든요.
작은 마음 씀
여러 기대감을 배반하면서 시작되는 이 전시의 작품들은 그래서인지 그 내용이 유기적이라기보다는 띄엄띄엄 분절된 것처럼 보여요. 게다가 전시장에는 ‘조심’이라고 적힌 안내판과 종이죽으로 만든 칼라콘이 자꾸 앞을 가로막아요. 그래서 그 작품 제목처럼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어요(<신경이 쓰인다>). 그러고 보면 <적당한 사이>, <메리, 매리와 메리의 매리, 그리고 메리>, <아는 돌> 등의 제목에서는 애초부터 작품들이 전시를 위해 하나의 키워드로 묶지 않을 거라 단언하는 듯 보여요. 그럼에도 대화 중 발생한 침묵 그리고 세대별 차이를 말줄임표와 빛의 색으로 형상화한 <시차>, 조심스레 혹은 눈치 보며 안부를 묻는 연락에 대강 대꾸하는 듯한 <ㅇㅇ>등은 다시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를 상기하게 해요. 그래서인지 각자 다른 말을 하는 줄 알았던 작품들이, 마치 반쯤 읽은 소설의 구조처럼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작가의 조각들을 볼 때마다 그들이 작가가 쓴 시나리오가 배경이 된 무대에서 서 있는 배우들이라고 생각해요. 작가가 짊어준 언어를 형식적으로 충분히 수행할 준비가 된 배우요. 작가가 그 언어들을 구사하는 방식은 브로타스Marcel Broodthaers나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처럼 언어유희나 풍자의 어법이 아닌, 일상에서 쉬이 사용되는 언어와 문장에서 지각한 미시감을 통째로 사물에 접합시켜 그 둘이 마찰하거나 전복하는 순간을 지켜보는 데 더 가까운 것 같아요. 그건 <시차>처럼 선택된 언어와 조형이 일대일 대응을 이룰 때도 있지만 반면 주요한 신(scene)에 다다를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나의 섬>에서 청 테이프로 만들어진 작은 성은 <너의 성>과 함께 마주보고 있는데요. 견고해보이지만 테이프로 얽어진 껍질이 벗겨지면 섬은 무너질 것만 같고, 정작 있어야 할 상판 없이 밥상의 뼈대만 남은 공간에는 작은 도기로 된 성이 덩그러니 있는 풍경이 부딪혀요. 작가는 이 작품에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 ‘난 잘있어’,‘아마도 혼자 차려먹을 밥상’, ‘고립’등의 문구를 걸쳐놓고 어떤 장면을 상상하게 해요. 그래서 당신은 떠올리겠죠. 당신의 부모와 당신의 관계를 혹은 그에 상응하는 누군가와의 경계 짓는 대화를. 그 연상 속에서 테이프로 된 유약한 섬(을 흉내낸 구조물)과 검은 밥상 속 보잘것없는 성은 엮일 수 있는 자리를 찾을 거예요. 마음을 쓰는 일의 고마움, 그리고 어려움과 불편함을 인식하면서요.
아, 저기에는 ‘조심’이라고 적힌 칼라콘이 구겨져 쓰러져 있어요. 당신이 계단을 올라가기 전에요. 그런데 정말 그걸 조심하고 지나가면 될까요 아니면, 그를 일으키고 구김을 펴 다음 사람을 위한 호의를 베풀어야 하는 걸까요. 그에게는 그게 배려일까요? 그리고 그 행동은 이 전시장의 질서와는 무관할까요?
우리의 시간
몇 년 전 작가의 전시에서 로봇 청소기로 된 작품을 본 적이 있습니다. 눈알을 붙인 채 이곳저곳을 부딪혀가며 청소하는 그들을 보며 이상하게 슬펐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나 《아들의 시간》에서나 씁쓸한 웃음을 주는 건 여전하네요. 계단에 올라가 <적당한 사이>를 한참 내려다보며 또 그랬어요. 장미꽃 모양을 만든 리본을 받치는 각자 다른 지지대들 말이에요. 언젠가부터 저는 제 의지와 행동을 고되게 하는 상황과 존재들에 대응하는 걸 그만두게 된 것 같아요. 예쁘고 아름답다고 일컫는 걸 모두 같이 만들기 위해 웃으며 리본을 꼬면서도, 그래서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각자의 입장은 철저히 다르겠지요. 그래서 《아들의 시간》에 얽힌 언어와 그 ‘배우’들은 마치 거울처럼 우리가 겪은 시간들을 비춰냅니다. 그 혼잡한 언어들을 마주하고 동조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겠다며 큰 소리로 자신을 숨기는 이들보다 어쩔 수 없다면서도 질척거리는 작은 움직임들에 눈이 가네요. 아마 작가는 거기서 또 발견한 틈을 꺼내어 자신의 언어를 사용해 우리 앞에 내세우겠죠. 그건 또 어떤 삶과, 생존의 이름에 대한 무게를 지닌 채 나타날까요. 인천의 서늘한 겨울 바람이 전시와 묘하게 어울리네요.
불확실함을 위한 교범: 박지혜 작가의 개인전 ⟪영광의 상처를 찾아⟫를 위한 노트, 박재용, 2019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무엇일까? 더글러스 애덤스의 소설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1978년 BBC 라디오 극으로 방송되었고, 1979에 소설이 발간되었다. 한국어 번역판은 1996, 2004년에 발간되었으며 2005년에 영화가 개봉했다)에 등장하는 도시 크기의 슈퍼컴퓨터, 깊은 생각(Deep Thought)이 750만 년에 걸친 계산 끝에 제시하는 질문은 이렇다. 42.
심오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왜 42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이 존재한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DOS 운영체제에서 동일한 확장자를 가리키는 모든 파일을 나타내는 기호 *의 ASCII(미국정보교환표준부호) 코드가 42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에서부터, 저자와 제목의 글자 수를 합치면 (30+12) 42가 된다는 의견, 일본식 고로아와세(語呂合わせ, 독음이 비슷한 숫자나 문자로 의미를 바꾸는 것)으로 42를 읽으면 시니(死に, 죽음)이기에 우주의 궁극적 해답은 ‘죽음’이라는 의견 등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소설의 원작자인 더글러스 애덤스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애덤스의 말을 빌자면, “2진수 표현, 13진법, 티베트 승려들의 신비로운 숫자들은 다 앞뒤가 맞지 않아요. 책상에 앉아서 정원을 바라보다가 42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타자기로 숫자를 입력했습니다. 그뿐이에요.”
수비학(數秘學, Numerology)은 숫자를 사용해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일종의 점술이다. 수비학적인 관점에 따르면, 숫자는 만물의 원리를 나타내며, 우주의 모든 사물은 숫자로 계량화하여 질서를 부여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특정한 존재를 숫자로 나타낼 수도, 숫자를 특정한 존재로 치환하여 생각할 수도 있다. 예컨대, 계율상 신의 이름을 소리내 말할 수 없었던 유대교에서 신을 부르는 이름인 יהוה는 숫자 로마자 YHWH로 치환된 뒤 각 글자가 나타내는 숫자 10, 5, 6, 5를 합친 26으로 쓰였다. 말하자면 고대의 유대교 신자들에게 26은 곧 신의 이름이기도 했던 것이다.
언뜻 수비학은 그저 기호에 불과한 숫자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미신처럼 보인다. 결과는 눈 앞에 놓여 있지만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한 세상의 원리를 어떻게든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확실한 틀에 끼워 맞춰 설명하려는 애처로운 시도인지 모른다. 하지만 21세기의 기술 가운데 가장 진보한 영역이라는 인공지능의 영역에서도 본질적으로는 수비학과 다를 바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16년, 구글 번역기의 인공 지능을 연구 중인 과학자들은 번역기의 알고리즘이 100여 개의 언어 데이터를 학습하면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자체적인 언어를 개발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구글 번역기 서비스 안에서 작동 중이지만 기존의 인간 언어로는 파악할 수 없는 이 ‘중간 언어’를 설명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사이 언어(interlingua)’라는 이름을 새로 만들어내야만 했다.
확실히, 지금 세상은 불확실하다. 사실 세상은 언제고 불확실하고 불안정했지만 이른바 ‘거대서사’에 간편히 기댈 수 있던 (일부 사람들에게 꽤나 편했을지 모르는) 호시절은 끝났다. 그러나 불확실함을 선뜻 받아들이거나 수용하기란 쉽지 않다. 불확실함 속에 놓인 이들은 외려 더 명확한 것을 갈구한다. 복잡한 사건이나 지식이 명확한 기승전결을 갖춘 ‘서사’로 재탄생하여 유통되기도 하고 (‘넓고 얕은 지식’의 유행을 보라), 단순한 믿음에 기반한 세계관이 유튜브를 위시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정보 유통 플랫폼들을 활용해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들기도 한다 (이른바 ‘가짜뉴스’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여러 나라의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
송은아트큐브에서 열리는 개인전 <영광의 상처를 찾아>(2019.11.13~12.18)에서, 박지혜 작가는 지금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불확실함을 해소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이는 갖가지 오브제와 액자에 든 이미지, 모니터를 통해 선보이는 영상을 제시한다. 전시라는 틀 안에서 ‘작업’으로 제시되는 것들은 불확실함을 해소하기는커녕 세계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킬지 모른다. 전시장 입구를 지키고 있는 강아지처럼 보이는 형상은 사실 마포 걸레를 겹쳐 만든 것이고, 아니 사실은 액운을 내쫓는다는 삽살개가 밀대 자루를 벗어난 걸레인 척 가만히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시장으로 바위를 옮겨온 것인가 싶을 큰 덩어리들은 사실 스티로폼으로 만든 ‘바위 비슷해보이는 어떤 것’이며, 스무 마리가 넘는 까마귀가 여기저기에 놓여 관람자를 맞이한다. 그런가 하면 전시장의 한 켠에는 ‘불타는 집’도 서 있다. 물론, 정말로 불이 붙어 연기를 내며 활활 타오르는 그런 집은 아니다.
전시장 안에 놓인 것들은 모두 무언가에 대한 의미부여를 참조하거나 거기에서 한 발짝 더 떨어진 상태, 그러니까 애초에 그것이 지시하고자 했던 대상으로부터 적어도 두 단계쯤 떨어진 채 존재한다. 작가는 작품들이 참조한 각각의 출발점에 대해서도, 의미에 대해서도 그리 자세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눈 밝은 관람자라면 마치 수비학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듯 전시장에 놓인 작업들에 의미를 부여해 꽤 먼 곳까지 나갈 수 있으리라는 점을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힌트: 이번 전시 출품작 가운데 짐 캐리가 수비학에 사로잡힌 인물로 등장하는 영화를 참조한 작업이 있다. 어떤 작업일까?)
명확한 서사도, 깔끔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 설명도 없는 상황에 답답해 할 필요는 없다. 생각해보자. 작업의 창조주 격인 작가가 미주알고주알 설명하는 것은 과연 전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 이미 지난 몇 년간 작가는 반복적으로 이런 경험을 한 바 있다. 명확히 말하면 “너무 단정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조심스럽게 말하면 “우물쭈물한다고” 비난받는 상황에 놓였던 거다. 따라서 <영광의 상처를 찾아>는 단정적이지도, 우물쭈물하지도 않는다. 이번 전시의 작업들은 명확함의 호시절이 끝난 지금, 불확실함을 헤쳐나가기 위한 우리들을 위한 교범을 보여준다. 물론, 전시장에 놓인 교범들에서 무엇을 얻어갈지는 언제나처럼 관람자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2019년 11월
무제: 개인전 ⟪영광의 상처를 찾아⟫ 전시 서문, 정푸르나, 2019
박지혜 작가는 집단적 합의를 위해 암묵적으로 묵인되는 개인의 불편한 지점을 꼬집어내며, 정상과 비정상, 성공과 실패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을 다시금 깨우치게 하는 작업을 선보여왔다. 작가는 개인적인 경험으로 시작된 고민을 통해 사회적인 규범을 형성하는 “합리적인” 선택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다수의 만족을 지향하는 원리, 원칙에 대한 의구심은 곧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번 전시 《영광의 상처를 찾아》에서 박지혜는 합당한 것으로 여겨지는 믿음에 따라 개인이 가져야 하는 자그마한 상처에 관해 이야기한다. 사회에 속하기 위해 그 안의 이미 규정된 ‘믿음’에 따르면서 생긴 이 상처에 대한 집중은 보편적인 규칙을 벗어나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거나 맥락화하는 행위는 아니다. 다만 전시장 안에 어느 순간부터 특정한 의미를 대표하는 상징물들이 부유하며 우리의 선택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전시를 살펴보면, 삽살개 형상을 한 오브제 작업 (2019)가 송은 아트큐브의 입구를 지키고 있다. 마포걸레로 만든, 조금 지저분한 털을 가진 개 조각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흰 개는 귀신을 본다"는 미신을 연상케 한다. 일반적인 흰색 털을 가진 개에서 벗어난 이 형상은 윈도우 갤러리에서 전시장 전반의 액운을 막아보려는 시도로 보이나, 그 의지는 불분명하다. <사랑하는 나의 친구여>(2019)는 메인 갤러리 입구에서부터 시작하여 통로를 형성한 설치 작업으로, 관람객은 무언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혹은 일어난 것) 같은 습지에 모여있는 까마귀 23마리를 만나게 된다. 예로부터 까치를 보면 행운이 오고 까마귀를 보면 운이 좋지 않다는 설화가 있을 정도로 현대 한국에서는 보통 까마귀를 흉조로 보는데 북유럽 신화에서 까마귀는 지혜를 상징하는 길조다. 토테미즘에 의해 까마귀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상황이다. (2019)은 튼튼하고 안전하게 지어졌지만 결국 불에 타고 있는 오두막을 형상화한 설치 작업이다. 소금은 본디 부정한 것을 막아주고 액운을 떨쳐낸다는 미신으로 이어지는데 안타깝게도 소금이 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두막은 불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다.
확실한 서사가 없이 배치된 작업들은 모두 사회적으로 부여된 의미에 따라 뜻이 달라진 상징물들과 함께한다. 물론, 이 상징성을 명확히 하는 것은 보는 이의 자유일 것이다. 작가는 결국 맥락에 따라 통용되는 의미를 따르는 듯하지만 결국 우리가 바라보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게 개인인지, 혹은 집단의 합의에서 도출된 의미인지 하는 이 상황을 보여주고자 한다.
말해야 하는 것, 말할 수 있는 것, 김혜진, 2019
나는 2017년 박지혜 작가를 처음 만났다.
<평범한 실패>라는 소설(전시 작품 중 하나였다.)을 쓰는 데에 도움을 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지만) 이를 수락하면서였다. 이듬해 박지혜 작가의 개인전이 열렸고, 올해 국립현대미술관 레지던시 세미나를 함께 준비하면서 작가와 몇 차례 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나는 박지혜 작가가 언어에 매우 민감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작가는 장황하고 현학적이고 추상적인 말들에는 관심이 없다. 언제나 정확하게 효율적으로 언어를 구사하는 데에 집중하며, 보다 쉽고 단순하게 언어를 운용하는 데에 공을 들인다. 아마도 단어나 문장이 지닌 단일한 의미를 넘어서 그 말들에 달라붙은 아주 작은 의미들과 그 말들이 가닿을 수 있는 의미의 영역까지 고려한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박지혜 작가의 이런 언어적 민감도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박지혜 작가 개인의 성향과 취향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 작가의 설치 작품들에는 단어나 문장이 직접 제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잘못 보셨습니다>,<useless>,<태어나서 죄송합니다>, <some-thing>, <그 어느 날>, <아무 일도 없었다> 같은 작품들 속에 포함된 단어나 문장은 결코 사전적인 의미 그대로를 의미하지 않는다. 작품 안에서 그 말들은 사회적 맥락이나 함의와 중첩되면서 전혀 다른 의미와 효과를 불러온다. 그리고 그것이 가리키는 것이 우리가 보편이라고 말하는 제도나 규칙, 표준에 대한 의문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나면 작가가 지닌 언어적 민감도를 단순히 개인적인 성향이나 취향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진다.
언젠가 박지혜 작가는 미술계 안에서 통용되는 언어의 불편함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언어는 전시 서문이나 비평, 평론이나 작가 노트, 기획서나 작품 소개글을 말하는데, 작가는 이런 글들이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추상성이나 모호함, 불친절함에 어떤 한계를 느끼는 듯 보였다.
어떤 예술 작품이든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감상하고 해석하는 데에는 필연적으로 언어가 동원될 수밖에 없다. 물론 언어가 어떤 작품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어라는 것은 결코 작품과 1:1로 대응되지 않으며, 대부분의 경우 작품으로부터 너무 멀거나 가까이 있는 탓에 어떤 오해와 몰이해, 역전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불필요하고 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작가는 고민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말해야 하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에 대해. 작가와 작품 사이에 혹은 작품과 관객(독자) 사이에 어쩌면 최초로 놓이게 될 그 가느다란 다리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해. 그건 창작자에게 늘 어렵고 조심스러운 문제다. 어쨌거나 박지혜 작가가 기존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찾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작가의 작품 세계가 던지는 질문과 밀접하게 이어진다. 그러니까 제도와 규칙, 보편과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을, 기존의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에 작가는 아마도 어떤 답답함과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박지혜 작가의 작품이 기존 시스템에 반기를 들거나 전복을 시도한다고 보긴 어렵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 또한 결국 시스템 안에서 이뤄진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작가의 작업은 질문이나 제시 같은 조심스러운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작가 개인의 입장이나 의견을 최소화하는 대신 그것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늘 관객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박지혜 작가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표준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이고, 그것들을 이루고 지속하는 요소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제시하는 사람이며, 그것들을 표현하기 위한 자신만의 언어를 찾는 사람이다.
이렇게 적고보니 박지혜 작가의 작업을 너무나 명료하고 단순하게 말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남는다. 특히 자신의 작품세계를 제대로 표현할 만한 언어를 찾는 것은 당연해보이고 어려울 게 없는 일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관례나 관행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긴 시간을 담보하기 마련이고 그 나름대로의 권력을 지니며, 그래서 그 질서를 따르지 않는 데엔 큰 용기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작품이 기존 시스템 안에서 풍부하게 해석되지 않거나 혹은 언급되지 않으며 그래서 충분히 알려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각오해야 하는 일일 수도 있다.
박지혜 작가는 예술가의 존재 이유가 어떤 대화의 장을 마련한다는 데 있다고 여러차례 말한 바 있다. 나는 그 말이 박지혜 작가가 완성해가는 작품세계의 핵심이고, 본질이며, 힘이라고 생각한다. 박지혜 작가의 작품이 지금보다 더 풍부하고 이야기되고 논의되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반사회성의 사회성: 박지혜 개인전 ⟪평범한 실패⟫에 붙여, 장진택, 2018
박지혜는 작업을 통해 아무런 의심 없이 통용되고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이를 관통하는 이른바 ‘합리적’인 ‘이해’나 ‘기준’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세계가 요구하는 통상적인 합리성, 만족, 행복, 성공과 같은, 이른바 객관적인 프레임에 대한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들은 모두의 평화를 위한 모두의 합의를 도출하고자 하는 다수의 의도,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사실 우리가 살아가(야만 하)는 이 사회는 역사라는 기록을 통해 ‘절대성’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이미 증명했지만, 그 반면 이와 같은 단순한 진리를 통해 제시할 수 있는 어떠한 급진적인 변화 또는 반발의 가능성을 유연하게 차단하는 것에도 익숙하다. 각 개인은 각자의 이익을 위해 집단을 형성하고, 이 집단은 하나의 거대한 구조를 세워 그들을 보호하려 한다. 만약 이에 정면으로 맞서려는 순간, 집단 구조체는 그러한 이단의 존재를 단숨에 도태시켜버리거나 혹은 제명해버렸던 사례들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목격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개인은 각자의 선택을 영위할 자유가 있으며, 그 선택의 근거는 객관과 주관 사이에서 발현하는 ‘균형’에 기인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합리, 만족, 행복, 성공 이외에도 정상, 완성, 일반과 같은, 소위 올바르거나 긍정적인 지표(指標)들은 당장에 우리를 현혹할 뿐, 결코 영원히 영속적인 정의로 지속할 수 있는 의미는 아니다. 따라서 이와 대립하는 항인 불합리, 불만족, 불행, 실패, 비정상, 미완성, 예외와 같은 부정적이며, 올바르지 않다고 인식되는 형이상학적 개념에 대한 현상적인 가치 정립이 때때로 시도되어야 함은 자명하다. 박지혜의 작업은 이처럼 불편하거나 불필요하다고 인식되는 영역과 사회 일반 가치 영역 사이를 메우고 있는 수많은 현실의 단계를 비추어 냄으로써, 고정적인 이분법적 사고로부터 우리의 내적 체계를 해방하려는 듯하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합리성에 대한 추종에서 필연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불합리성이나, 그 추종의 끝에 언제나 찾아오는 모호한 결과와 같은 ‘모순적 상황’을 조명하는 것으로 작가의 논리적인 귀결을 끌어낸다. 이와 같은 태도는 작가가 제시하는 작품이나 그 전시의 제목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박지혜는 전시 «평범한 실패»(갤러리 조선, 2018)를 통해 바로 이와 같은 이율배반적 삶으로부터 채집한 새로운 합리적 의심의 씨앗을 주어진 표준이라는 지표(地表) 위에 파종한다. 작가는 본 전시에서 맹목적인 신뢰의 가능성을 의심하는 한편, 절대적인 공정성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사회의 구조가 마련하는 다양한 자기방어책에 균열을 초래하고, 완성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역설하기도 한다. 이에 더해 작가는 단순히 자신이 맞닥뜨린 보통의 조건과 기준에 대한 의구심을 표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지점에 대한 본인의 입장을 분명하게 표현하는데, 이는 스스로의 축적된 경험을 통해 새로운 일반화를 취하려는 태도로 나타나기도 하며, 나아가 능동적으로 타인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물론 박지혜의 작업은 견고한, 그 때문에 때로는 강압적인 시스템의 요구에 하나의 다른 주파수의 미묘한 파동을 일으키려 할 뿐, 이를 완전히 전복시키거나 또 다른 담론화를 선동하지는 않는다. 작가의 시선은 그저 조건 없는 복종이나 거부, 그 극단적인 두 선택의 지점 양 끝에 좌초하고 있는 동시대의 단면을 진정으로 바라보기를 당신에게 권유한다. 작가를 통해 우리는 어쩌면 가끔은 쓸리며, 가끔은 거스르려는 우리 삶의 자연스러운 표류를 인정할 흔치 않은 기회를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실패를 (찢어)보기: 개인전 ⟪between flip turns⟫ 전시 서문, 김미정, 2017
어떤 조직이나 공동체 내에서 매뉴얼은 권력을 가지기에 매력적이다. 어떻게 매뉴얼이 권력을 가진다는 것인가? 수많은 시행착오의 반복 끝에‘다시는 이렇게 하지 말자’는 다짐에서 나온 결과물이 매뉴얼이다. 때문에 매뉴얼은 무한 신뢰를 얻으며, 그에 의해 운영되는 방식들을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그렇기에 매뉴얼은 권력을 소유한다.
매뉴얼이 꼭 집단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인식 체계에도 고단한 인생사와 그로 인한 성장을 거쳐 만들어진 일종의 개인 매뉴얼이 있다. 타인 대하는 법, 특정상황 대처법 등 나름 양식화된 매뉴얼이 존재한다. 이 또한 실수를 방지할 수 있는(혹은 이불 속에서 하이킥을 날리지 않기 위한) 나만의 단단한 방패가 된다.
결국 모든 매뉴얼은 인간이 실패를 두려워한다는 증거이고, 그렇게 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리는 알고 있다. 매뉴얼은 늘 어긋나며 꼼꼼하고 체계적인 매뉴얼일수록 오히려 행위의 제약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작년, 박지혜 작가의 작가노트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작가가 매뉴얼화 된 시스템을 혐오하며 그 안에 굴러가는 모든 것에 회의적일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성급한 짐작은 오해를 만든다. 작업에 소모되는 에너지와 시간에 비해 너무도 쉽게 끝나버리는 전시, 전시 과정에서 오는 피로감, 그리고 작품 폐기의 과정을 겪으며 이제‘쓸모 있는 예술 활동’을 추구한다는 작가의 말에서 나는 노동과 미술계 구조의 문제만 읽는 실수를 한 것이다.
물론 편견은 작가와의 인터뷰 후 아주 쉽게 무너졌다. 작가가 시스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거기에 날선 태도로 응수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안에 속한 자신을 인지하고 있다. 다만‘제약’의 지점 그리고 정교해 보이는 시스템 뒤의 허점을 찾아내고, 이를 작업에 위트 있게 반영한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그 안에 자신의 노동의 의미와 그 존재 가치에 대한 질문을 배치한다.
전작들에서 쓸모 있는 예술 작품이 되기 위해 매뉴얼에 따른 이른바 효율적인 방식을 작품에 적용했다면, 777레지던시에서의 개인전 《No one in charge》에서는 매뉴얼의 허점을 기성품의 공정형식에 빗대며, 화환의 타이포(<그 어느 날>(2017)), 상장의 로고(<QQQ>(2017))등을 통해 비효율적이지만 룰이기에 따라야하는 시스템의 모순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번 개인전 《Between flip turns》에서는 미디어가 노출하는 획일적인 여성의 이미지(<전사의 후예>(2017)), 정해진 틀 안에서 제지당하고 감시당하는 움직임(<보호관찰>(2017))등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지만 쉬이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마주하게 만든다.
전시 제목에 등장하는 플립턴(flip turn)은 사전에 따르면 수영장 끝에 다다랐을 때 앞쪽으로 반 정도 돈 다음, 벽을 두 다리로 힘차게 밀어 다시 반대편을 향해 나아가는 턴이다. 수영선수들은 경기에서 정해진 루트를 돌 때마다 플립턴을 꼭 해야만 한다. 초반에는 힘찼던 그 움직임이 장거리 경주에서는 체력고갈로 인해 조금씩 느려진다. 이 고통스러우면서도 지루한 반복이 언제 끝날 것인지 확인하는 것은 경기를 보는 이에게도 괴로운 일이다. 그럼에도 선수는 완주해야하며 심지어 순위권 안에 들어야 한다. 이 움직임은 반복되는 수직적 조직문화, 목표달성이라는 이상을 위한 희생, 그리고 그것을 부추기는 사회를 충분히 떠올리게 만든다.
<보호관찰>은 바닥에 열심히 크레파스로 낙서하는 로봇 청소기의 어처구니없는 귀여움에 실소를 내뿜다 이내 슬퍼지는 작품이다. 키치적인 장식을 얹은 로봇청소기는 작가가 달아준 눈과 팔을 달고 바지런히 움직이지만, 실제로 눈이 없을 그들은 자신들에게 허용된 유일한 공간인 바리케이트 내 이곳저곳을 부딪히며 튕겨져 나간다. 배터리가 닳아야지만 멈출 로봇의 미래는 더 이상 귀엽지 않은데, 관객은 애처롭게 그들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그들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그 끝을 기다리는 위치에 놓인다.
장면을 조감하여 우리가 속한 구조를 보게 만드는 또 다른 작품은 <( ) 버리는 날>(2017)이다. 이 영상은 작가가 제작 당시 모든 것을 쏟아 부었을 작품을 버리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작가 외에 누구에게도 이 날은 특별하지 않다. 그저 이웃 공동체가 정한 쓰레기 버리는 날에 불과하다. 그 틀 안에서 사람들은 정해진 방식대로, 규칙적으로 움직여 자신에게 쓸모없어진 물건들을 내놓는다. 해체된 작품은 사각형의 아파트 단지와 주차장의 정돈된 구조 사이에서 무색하게 자리한다. 예술이라는 이름하에 만들어졌을 그 고단한 노동의 결과가, 체제 안에서 쓸모없는 것으로 귀결되는 씁쓸한 과정을 작가는 덤덤하게 보여주고 있다.
박지혜 작가가 노동을 이야기하든, 시스템을 이야기하든 그 안에는 지속가능한 방식을 찾고자 하는 작가의 간절한 바람이 있다. 그만큼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기에 쓸모 있게 사는 것을 추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실패는 그래서 더더욱 두렵다. 효율성을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관찰과 조급함의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속도의 걸음 사이에서 지속 가능한 리듬감을 찾으며 자신의 작품이 쓸모 있을 수 있는 지점을 진지하게 탐구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완벽하게 쓸모없는>(2016)을 떠올렸다. 플립시계에 부착된‘완벽한’에서 시작하여 ‘쓸모없는’으로 끝이 나지만 다시 ‘완벽한’으로 시작되는 것처럼, 작가는 부당함에 하소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웃으며 시스템의 허점을 헤집는다. 그래서 나는 박지혜 작가의 작품의 그 시니컬한 실소와 그 뒤에 남겨지는 씁쓸한 여운을 좋아한다.
이제 작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넘어 효율이라는 이름의 사회적 합의 혹은 그 실체를 가리고 있는 레이어들을 찬찬히 살피며 작업의 장을 넓힐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계속해서 작가의 작업은 오해를 받을 수도 있으며, 스스로를 갈아내며 작업해야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특유의 정교한 작품을 통해 실패라는, 외부에서 정해준 두려움을 갈기갈기 발라줄 것(!)을 기대하게 된다.
간신히 부질없을 것, 안소현, 2016
프랑스어에 à peine이라는 부사구가 있다. 이 구문의 핵심은 peine(고통)이다. 따라서 à peine의 어원에 가장 가까운 의미는 ‘간신(艱辛)히’ 이다. 그리고 우리말과 마찬가지로, 고단한 노력은 목표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것이라는 전제 하에 그것은 ‘가까스로’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표현이 쓰인 문장을 우리말로 번역하다보면 난감한 경우가 생긴다. 그것은 문맥에 따라 어떤 때는 ‘가까스로 성공했다’는 안도감을 나타내지만, 다른 때는 ‘기껏해야 ~ 밖에 안된다’는 열패감을 내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표현을 번역할 때는 먼저 행위의 성패를 따져봐야 한다. 그래서 문장의 주체가 결국 성공했다는 것인가, 실패했다는 것인가? 말의 외연은 기준선에 가깝다는 좌표를 나타낼 뿐이지만, 내포는 그 기준선에 닿은 자와 닿지 못한 자를 기어코 나누라고 요구한다. 이 표현이 고통에서 시작해서 목표에의 접근을 의미하다 급기야 그 의미가 통하려면 성패가 구분되어야 하는 상황은 얄궂게도 이 곳의 젊은 작가들의 삶과 닮았다. 박지혜는 작가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이 ‘간신히/가까스로/기껏해야’의 복잡한 정서를 물리적 공간과 경제적 맥락 속에서 풀어놓는다.
제약은 나의 힘
우리의 미술환경에서 이제 막 한두 번의 개인전을 거친 작가가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작업실을 갖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까스로 (대부분 전용이 아닌) 작업공간을 갖는다 해도 고민은 계속된다. 작업실에서 작품을 만든 뒤 그것을 전시장으로 운반해서, 전시를 하고 나면 그것을 별도의 창고로 옮기거나 판매하지 않는 한, 다시 작업공간으로 가지고 돌아와야 한다. 다시 말해 작업실이 충분히 크거나 용이하거나 가깝지 않으면 또 다시 엄청난 비용이 추가된다. 그래서 박지혜는 철저한 계획과 계산을 통해 이 조건 내에서 가능한 규격을 초과하거나 비용이 추가되지 않도록 작업을 한다. 예를 들면 작품을 얇고 가벼운 재료로, 작은 단위를 규칙적으로 반복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포갤 수 있게 함으로써 작가가 직접 운반하거나, 전시 후 폐기할 수 있게 한다. 2010년부터 박지혜가 자주 사용해 온 재료는 골판지나 크래프트지 같은 형태를 만들기 용이한 종이인데, 그것을 완벽하게 계산된 도면에 따라 자르고, 이어 붙여 구조를 만들고 에폭시나 우레탄을 입혀 전혀 다른 재료처럼 보이는 표면을 만들어낸다. 박지혜는 스스로 처리하기에 좋은, 심지어 “버리기에 완벽한” 작품들을 만든다고 말하곤 한다. 현재의 경제적 조건에 간신히 맞추고, 있는 만큼의 공간에 가까스로 밀어넣는 작업을 하지만, 그 결과물이 기껏해야 제 자리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박지혜의 작업은 최적화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박지혜의 작업은 제약을 없애거나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거기에 종속된다는 점에서 수행적이다. 일일이 종이의 치수를 측정하고 계산해서 손으로 잘라 붙여 매끈한 구조를 만드는 일은 질릴 만큼 노동집약적인데다, 그런 작업들을 철저하게 주어진 공간 안에서 제작, 전시, 보관 혹은 폐기할 수 있게 함으로써 예술활동의 제약 자체를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련의 작품들을 맞닥뜨리면 그런 수행적 의미가 전부라고 요약하기에는 눈 앞에서 읽어낼 것들이 너무 많다. 시선은 어느 새 작가를 둘러싼 환경에서 작품 자체로 옮겨간다.
감각의 배반과 제한
박지혜는 종이로 공장이나 공사현장 등에서 볼 수 있는 크레인, 저장탱크 같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무거워보이는 금속 구조물이나 사물들을 작게 축소해서 모형처럼 만드는데, 정교하게 칠한 안료 때문에 이 종이 구조물은 꽤 무거워보인다. 하지만 작가는 그것을 다시 가뿐히 매달거나 아슬아슬하게 설치해서 가벼움을 강조한다. 재현된 대상의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크기와 무게의 이미지를 축소를 통해 제거한 다음, 다시 색과 표면으로 무거운 원재료처럼 보이게 만들고, 또 다시 실제의 가벼운 무게를 눈치채도록 설치해서 이미지를 전복한다. 대상, 질감, 크기, 무게는 이내 기대를 저버리고 엎치락 뒤치락 서로를 배반하면서 마그리트의 파이프처럼 읽어낼 거리들을 만들어낸다. 건물의 복도에 육중하게 살랑거리는 <Chain>(2011)이나 방파제의 테트라포드를 와르르 띄워 놓은 <Overflow>(2012-13)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박지혜의 감각에 대한 관심은 2013년의 첫 개인전《붉은 방》에서 가장 첨예하다. 작가에 따르면 ‘붉은 방’이라는 제목은 눈을 감은 상태에서 느껴지는 색과 공간의 감각에서 착안했다고 하며, 실제로 전시장에는 검은 선들 사이로 붉은 빛을 뿜어내는 조명들이 ‘짐승같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전시의 작품들은 주로 종이와 우레탄을 사용한 이전의 작품들과 꽤 달라보인다. 일부 작품에서는 커다란 구조물을 축소하여 모형처럼 만드는 작업 방식을 고수하고 있지만, 종이-우레탄 구조물에 비해 훨씬 언어화하기 힘든 감각들을 자극한다. 전자에서는 두드러진 감각을 설명하기 위한 단어들을 추려내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대부분 ‘큰’, ‘작은’, ‘무거운’, ‘가벼운’ 같이 형태를 규정하는 형용사 수식어들인데다, 단어 간의 대비도 분명했기 때문이다. 반면 이 개인전의 작품들은 몇 단어로 쉽게 묘사되지 않는다. 특히 전시실 모서리에 단번에 묘사하기 힘든 기묘한 유기체의 일부 같은 형태로 자리 잡은 <Red_faint>(2013)는 작가가 신체적 한계에 이르러 정신을 잃었을 때의 감각을 애써 기억해내서 시각화하려고 한 작업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형용하기가 어렵다. 종이-우레탄의 감각이 선명하게 응결되는데 비해, 붉은 방의 감각들은 구름처럼 흩어진다.
하지만 외견상 전혀 다른 이 작업들을 다시 묶어주는 것은 박지혜 특유의 ‘빠듯함’이다.《붉은 방》작업들도 한계 상황에서 극히 제한된 감각을 어떻게든 붙잡으려 한다는 점에서 아슬아슬하긴 마찬가지다. 작업의 동기가 달라졌을 뿐 제약을 감각의 힘에 의존해 드러내겠다는 일관된 관심이 보인다. 실제로 ‘작업과정에 끼어드는 현실적 제약’과 ‘제한된 감각’을 직접 결합한 작품도 있는데 <헤아릴 수 없는 애정과 관심>(2015)이 그것이다. 이 작품은 “무보수”라는 단어를 색각이상 검사를 위한 알록달록한 이미지처럼 만든 것인데, 작가는 실제로 전시 과정에서 겪은 부당한 경제적 제약을 출발점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는 이 소통불능의 상태를 신체적 감각을 매개로 전달하려고 한다. 관객은 처음에는 단어를 읽어내는 데만 집중하지만, 점차 세심하게 왜곡한 이미지의 윤곽이며 애써 고른 액자, 컬러 이미지와 대비되는 70장의 가독성 없는 무채색 출력물들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감각적 소통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로 나뉘는 경계에서 의미를 발생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한 흔적을 보게 된다.
작품-신체-텍스트
박지혜가 사용한 재료와 매체들이 다양하다 보니, 그의 일관성을 작품의 외부, 즉 미술제도나 예술노동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찾으려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달리 보면, 작가는 그렇게 변수나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현실에 처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신체와 작품 모두를 물리적 공간을 차지하고 버텨내야 하는 하나의 몸뚱이로 인식하는 내적 일관성을 갖는다. 조각을 하는 작가에게 운신의 폭이 좁다는 말은 은유이면서 동시에 글자 그대로 공간적 의미로 이해된다. 그리고 그런 ‘몸 하나 둘 곳 없음’을 신체적 감각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자연스럽고 효율적이기까지 하다. 작가의 신체를 작품과 연결하는 태도는 최근 작가가 집중하고 있는 텍스트 작업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요가교본처럼 만든 소책자 <실전작업요가>(2015)나 텍스트 설치인 <헌신의 요가>(2015)는 작업을 하는데 필요한 특정한 동작들을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작가의 신체를 자꾸만 불러낸다. 이 작품을 위해 박지혜가 텍스트 혹은 책이라는 매체를 선택했다는 것은 조금도 놀랍지 않다. 책의 몸은 공간적 제약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뿐 아니라, 작가가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종이로 되어있지 않은가. 애초에 편집은 공간 속에 의미요소들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조각작업이 아니던가. 게다가 텍스트는 언어와 이미지의 무한한 조합을 열어놓으며 그 어떤 매체보다 큰 효율을 자랑하지 않는가. 두 번째 개인전이자 텍스트인 <홀리홀리홀(Wholly Holy Hole)>(2015)은 작품-신체-텍스트에 대한 한 덩어리 사유방식의 절정을 보여준다. 가벼운 종이나 모형재료들로 엄청난 노동력을 쏟아 부어 동그란 구멍 형태의 구조물(<Nightmare_the white castle>(2014-2015))을 만들던 작가는 그 비효율의 낭떠러지에서 오는 현기증과 온몸이 빨려들어가는 듯한 신체감각을 기반으로, “구멍에 대한 경외와 탐닉”에 관한 페이크 다큐를 써내려간다. 웹브라우저의 아이콘부터 도너츠에 이르기까지 온갖 구멍 형태에 대한 음흉한 상상의 텍스트들은 끝간 데 없이 황당하게 뻗어나간다. “상상은 공짜”라는 그 진부한 표현이 어떻게든 몸을 뻗을 구석을 찾는 박지혜에게 적용되었을 때는 어쩐지 예사롭지 않은 쾌감을 수반한다.
다른 한편, 감각으로 텍스트의 구성 방식을 휘저어놓는 작품도 있다. <헤아릴 수 없는 애정과 관심>에서는 한 단어의 가독성이 문제였지만, <완벽하게 쓸모없는>(2016)에서는 플립 시계 형태의 단어판들이 짝을 이루는 방식이 문제가 된다. 시계판이 넘어가면서 단어들은 불일치한 조합을 이루지만 그것은 무의미한 것으로 넘기기에는 작가가 처한 상황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구문(이를테면 “완벽하게 쓸모없는”)이 된다. 여기서 시계판이 넘어가는 감각적 효과는 결코 부차적이지 않다. <Still Here You Again>(2014)에서도 빛을 이용해 단어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게 함으로써 조합된 구문이 달라진다. 앞서 작가가 유독 “형용사적” 감각에 예민하다고 한 바 있는데, 추측컨대 그것은 속성, 성질을 규정하는 수식어(attribute)가 휘두르는 일종의 완력 같은 것을 감지했기 때문인 것 같다. 박지혜가 단어를 다루는 방식을 보면 규정으로부터 나아가, 규격, 규칙, 보편, 표준 등의 절대적 기준으로 정해진 것들에 대한 회의가 엿보인다(이것은 이제 써나가기 시작한 <표준의 탄생_intro>(2016)이라는 소설의 미래의 내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그 부과된 기준들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면서 그것을 ‘박지혜 식’으로 번역한다. 이번 아트 스페이스 풀의 전시《공감오류: 기꺼운 만남》에서 선보인 <순수한 소진_일시적 구조재>(2016)는 일정한 규격으로 생산되고 (경우에 따라 묶음으로) 판매되는 합판과 각목을 구입하여 치수를 정교하게 계산해서 자투리가 조금도 남지 않도록 잘라붙여 만든, 다른 용도는 없는 정육면체 덩어리들이다. 그리고 각 정육면체는 작가가 양팔로 들어올릴 수 있을 정도의 무게와 크기로 되어 있다. 세상이 정해준 치수를 자신의 몸에 맞추되 아무런 잔여물도 남기지 않는 이 치열하고도 무용한 행위는 묘하게 서글프다. 그러나 그 덩어리들은 예술가로 살기의 빡빡함을 드러내는 척도가 되면서 세상에 눈싸움을 걸 듯 오기를 내비친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뒤틀리거나 옹이를 드러낸 싸구려 목재들은 허탈함을 가중시킨다. 또 다른 작품 <순수한 소진_배회하는 상영관>(2016)은 작가가 예전에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채 보관 중이던 작품의 부품들(축소된 객석 모형)을 이번 전시를 계기로 되살리거나 혹은 써서 없애기 위한 설치이다. 수레처럼 손잡이, 바퀴, 가림막까지 장착한 이 장치는 결국은 다른 작가의 영상들을 보는 데 사용되기 위한 것이다. 어느 정도는 존재감의 경쟁구도에 들어가기 마련인 단체전시에서 이 작품은 엉뚱한 방식으로 존재이유를 찾는다. 작품의 몸은 박지혜의 몸에게 (작업실에서 나옴으로써) 자리를 내주고 다른 작품의 몸에다 잘 맞춰줌으로써 전시장에서 어슬렁거려도 좋다는 허락을 얻는다. 방구석에서 눈총을 받다 밖으로 나와 뭐라도 해보려고 시도하는 한량 같아 혀를 끌끌 차게 되면서도, 그 정교한 조명이며 야무진 생김새에 기특함마저 느끼게 된다.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박지혜의 종횡무진한 매체들을 아우르는 단어가 하나 있다. 라틴어 ‘corpus’는 어원상 신체를 의미하지만, 오늘날 여러 서양언어에서 단어들의 덩어리나 뭉치, 글들을 묶어놓은 책이나 작품집을 의미한다. 물론 박지혜가 서양어의 기원 따위에 관심을 가졌다는 뜻은 아니다(남의 말의 기원은 늘 매력적이고, 늘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 그보다는 팍팍한 환경에서 작업할 방식들을 찾다보니 박지혜는 자신의 작품을 몸이자 텍스트이자 덩어리로 인식하고, 또 다른 몸과 공존하게 하는 감각적 방법을 찾아냈을 뿐이다. 박지혜는 빠듯한 공간 속에 덩어리를 놓고 고민하면서 안간힘을 써서 어쩌면 허무한 것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세상이 부과한 규칙들에 대한 삐딱한 항명인 것만은 아니다. 예상 밖으로 이런 생존의 방식은 예술노동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 고전적 조각의 문제들, 즉 신체와 감각과 덩어리와 의미의 문제들을 진지하게 제기한다. 그것은 조각의 역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박지혜의 몸뚱이를 둘러싸고 비어져 나온 문제들이라 한없이 진지하다. 그리고 그 진지한 문제들이 박지혜가 작가로 살아가도 좋다는 허락을 내려주면서 다시 규칙을 부과한다. 간신히 부질없을 것!
작업 노트 #5: 개인전 ⟪아들의 시간 1/2⟫, 2022
TV에서나 볼법한 남 일이 코앞으로 들이닥치는 데 생각보다 대단한 이유가 필요치 않다. 가족, 동료, 특정 공통점을 가진 모임과 연고에 이르기까지, 사건은 관계 속에서 해석되기 마련이다. 이해와 몰이해는 늘 상대적인 기준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유연함 마저 적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음소거나 채널을 변경하는 선택도 가능하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불행을 피할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
돌아서기 무섭게 바뀌는 게 사람 마음이라던데 그래서 남들에게는 그렇게 관대한 자신이 구차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가장 가깝고도 먼 타자, 바로 가족을 대면할 때다. 같은 시간,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해 온 이들은 재미없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참아가며 시청하는 것과 같은 갈증을 호소하곤 한다. 좁혀지지 않을 차이를 알면서도 내심 같은 마음이기를 기대하는, 무르거나 끊어낼 수 없는 질척한 관계. 나는 어리석고, 모순되며 같은 실수와 후회로 점철된 인류 역사의 지속 가능성이 이 질척함과 구차함에 있다고 생각했다.
전시의 제목인 『아들의 시간 1/2』은 프로젝트 2부작 중 첫 번째로, 다음 세대를 위한 현세대의 고민과 배려 속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감정선과 욕망을 투영하는 작업이다. 코로나 시국을 기점으로 일정 부분 동기화된 사회 안에서도 특징적인 시차를 보이는 지역에 방문하여 차이를 통해 보편성을 발견하는 리서치를 진행하였다. 나는 그간 관심을 가져온 합리적/논리적 시스템의 경계선 이야기에서 반걸음 더 나아간,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비이성적 실체–인간성, 감정에 다가서고자 했다.
이 작업에서 나는 인천 원도심과 섬마을을 포함한 지역 리서치를 통해 삶의 현장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표현의 그릇을 관찰하였다. 다사다난한 인간사는 기본이요, 땅을 팠더니 문화재가 나와서, 재개발 이슈로 뜻하지 않게 발이 묶여버린, 다른 것[곳]에 적응할 여력이 없거나 불편한 무언가를 즉각적으로 충당/해결하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에 등 갖은 이유로 지역 주민들의 시간은 대도시와 다른 속도로 흘러갔다. 현실의 레이어를 조심스레 벗겨낼 때마다 삶의 민낯이 새로이 드러났다.
표면적으로 주목한 부분은 최대한 가진 것 안에서 불편함을 해결하는 사물 소비였다. 예쁘지 않고 낡은, 본래의 용도도 아닌데다 이미 해당 목적의 제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찰떡같이 맞아떨어지는 활용에 감탄할 따름이었다. 나아가 문제가 되는 상황을 파악하고 가능한 범주 안에서 해결책을 도출하는, 이것은 마치 어떻게든 걱정 끼치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하려는 말 없는 배려와도 같았다.
때때로 인색한 얼굴을 한 생존 기술이 더 큰 의미로 다가온 까닭은 아무 연관 없어 보이는 각자의 사정이 공동체나 다음 세대를 염려하는 인류애, 미시적으로는 내 새끼를 위하는 작은 마음씀으로 수렴되었기 때문이다. 『아들의 시간 1/2』에서 나는 이러한 감정이 현실에서 어떤 모양을 가지고 있는지를 조합-재현함으로써 경험의 차이로 인한 오해와 부정의 골짜기에 공감의 씨앗을 뿌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누구나 늙기 마련이고 어느샌가 나 역시 모든 것을 독식한 기득권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자신과 다른 것을 경계하는 동물적 본능이 인간 사회에서 유효한 역할을 하려면 그것의 결과가 오로지 거부/배제여서는 안 된다. 내가 심은 씨앗은 이번에도 말라 죽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매년 같은 일을 한다.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 실수를 함께 하며 반드시 살아남는 인류이기 때문에.
작업 노트 #4: 고양레지던시 입주작가 기획전 ⟪나는 내일 사라질 거예요⟫, 2019
우리는 굶어 죽을 걱정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사실상 ‘부족함 없는’이 아닌, ‘포화상태를 넘어선’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무한정으로 증식하다가는 지구가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기울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각 분야에서 덩치 키우가 무서운 기세로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미술 생태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비정상적인 생산이 물질과 정보를 양극화하는 동안, 전반적인 풍요 이면의 그림자는 서서히 그리고 광범위하게 삶을 잠식해갔다. 살지도 죽지도 못한 것들이 켜켜이 쌓여 드높은 탑을 이루고 있다.
새로운 생명에게 자신을 기꺼이 자양분으로 내어주는 자연의 순환이란 특별히 의도할 필요도 없는 연속적 사건이었다. 물질적인 속성(총량의 법칙)을 차치하고 보더라도 ‘부재’는 현존의 필요충분조건으로서 철학, 과학, 역사 등 인류의 시간과 궤를 함께해 왔다. 그러나 어딘가로 치워놓고 망각하면 그만인 오늘날의 사라짐은 직선의 끝점에 위치해 있어 막다른 길 너머로 감히 던져 버리지도 못한다. 죽은 존재의 좌표를 재설정하기 위해 우리는 현현하는 것과 휘발된 것의 끊어진 연결고리를 잇는, 애초에 사라질 것을 전제로 한 함수를 실험해 보기로 했다.
전시 ⟪나는 내일 사라질 거예요⟫는 존재에게 주어진 의무들 가운데 사라짐의 책임을 다양한 입장에서 조망하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서로 다른 채우기와 비워내기 방식을 비교/중첩하며 다수가 제한된 시·공간을 사용할 때 필요한 공생의 전략을 탐구하였다. 한편, 작가 모두가 빠져나간 자리에서는 공공의 질서를 위해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 행위가 다른 형태로 어떻게든 남기를 바라는 욕구와 혼재된 영역 또한 제시하는데, 각자의 적정선이 충돌과 양보의 미묘한 줄다리기로 구현된다.
기획/연출(박지혜)를 제외한 3명의 작가(고사리, 김정모, 이원우)는 비어있는 스튜디오를 작업실 2호점으로 이용하면서 일정 간격으로 갱신하는 공간 속에 자신의 방식대로 부재의 층위를 쌓았다. 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최초의 상태로 되돌려놓는 것과는 차별성을 갖는다. 이들은 처음부터 공간 리셋을 염두에 두고 다음 사용자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흔적을 감추거나, 어련히 사라져버릴 부산물을 가지고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 최종적으로는 대체로 비어있는(것처럼 보이는) 전시공간에 깨알 같은 파편만이 남아 과거의 힌트로 작동한다.
장 보드리야르는 그의 저서 『사라짐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라지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 문제는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무엇이 남는가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라진 모든 것이 계속 은밀히 살아가면서 음험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본 기획에서 언급하는 사라짐이 순수한 무(無)로 회귀할 것을 주장하는 바는 아니다. 실제로 불가능할뿐더러 보드리야르가 언급한 것처럼 어떠한 것도 완전히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는 존재와 부재가 등을 기대어 함께 설 자리를 마련하고 무작위로 양산되는 잉여 가치에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필요한 만큼만 기억되거나 잊혀질 선택의 칼자루를 우리 스스로가 쥐게 되길 바랄 뿐이다.
작업 노트 #3: 개인전 ⟪영광의 상처를 찾아⟫, 2019
갈 곳을 잃은 시선이 그의 얼룩덜룩한 팔에 멈춰섰다. 그는 일부러 딱지를 떼고 상처가 더욱 덧나게 만들었다고 했다. 크고 멋진 흉터를 갖고 싶었단다. 어쩌다 다쳤는지를 물어 보았던가, 아니면 그때 들은 대답이 기억나지 않는 걸까. 어쨌거나 보기에 썩 인상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오래전 일이다.
누구나 최소 한두 개 쯤은 가지고 있는 흉터 얘기다. 그러니까 살갗에 남은 것이든 가슴 깊이 아로새겨진 것이든, 맨살에 당연히 쓰렸을 그 스크래치 말이다. 모두가 안다. 서른을 훌쩍 넘겨도 통증은 통증이요, 고생은 그냥 고생이다. 그 ‘아닌척’을 얼마나 잘 하는지가 성숙한 사람의 척도라면 남은 삶이 너무 재미 없을 것 같다.
때때로 ‘어른 되기’란 그저 감각이 무뎌지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주체성을 소거하는 집단 최면처럼 느껴진다. 물론 크고 작은 사회가 형성된 이래로 순수하게 독립적인 감정을, 생각을 소유 하기 어려운 게 맞다. 우리는 눈치와 배려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의식하고 있으며, 집단적 합의에 어련히 침묵하는 경우 또한 허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랜 시간에 걸쳐 혼재된 자의와 타의를 단편적인 대립항으로 구분하는 대신, 나와 남이 아닌 것, 다소 말장난 같은 이 차이를 기준으로 하나의 대상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이중성을 띄곤 하는지 통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현상에 해석을 덧씌우거나 가치의 수준을 서열화하는 시스템상의 편의 중 기어이 살아남은 각종 질서 및 양식들을 작업에 차용해 왔다. 바꿔 말하면 다양한 삶의 형태를 획일화하고 최대 다수의 최대만족을 추구하는(그러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민주적 약속을 가리킨다. 사실 역사를 통틀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삶의 불확실성을 덜어 주는 약속의 단맛을 보았다. 오늘날 갑자기 발생한 유별난 일이 아닌 셈이다. 여기서 내가 주목한 지점은 그것이 시대의 변화 속도를 따라 오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기꺼이 불편함에 익숙해지기로 마음먹은 듯 보였다는 점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이해관계 속에서 우리의 최선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는지 떠올려보자.
그리하여 현재[가까운 미래]까지 작업의 지향점은 쉽게 감지되지 않는 미세 균열을 들쑤시고 드러냄으로써 공론의 장을 마련 하는 것이다. 의구심에 자리가 필요하다면 감히 내가 내어드리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다만 허공을 맴도는 원리/원칙을 지양하며, 일상과 끈적하게 얽혀있고 언제나 비슷한 자리에 머물러 왔던 소재와 태도를 활용한다. 마치 메추리알로 바위치기 같은 도발로, 못된 장난을 통해서 말이다.
아주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런 작품/전시가 세상을 바꿀만한 반향을 일으키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원망의 모든 화살을 외부 세계로 돌리는 것 또한 아니다. 하찮은 자기 반성을 촉매로 나는 한때 자신의 것이었을 경험을 영영 잃지는 말자고, 대의를 조금 거스르더라도 ‘이정도 삐딱한게 뭐 어때!’라는 말을 건내고자 한다. 끝으로, 이 이야기의 진짜 제목은 이것이다.
“영광의 상처는 무슨...”
작업 노트 #2: 개인전 ⟪평범한 실패⟫, 2018
프랑스산 밀가루와 유기농 버터를 가지고 누구나 숯을 만들 수 있다. 적당한 덩어리를 오븐에 넣고 다이얼을 힘껏 돌린 뒤, 장래희망이나 노후 준비 같은 막막한 걸 생각하면 된다. 새까만 빛깔이 잘 안 나왔다면, 구두약을 듬뿍 발라보자. 어쩌면 먹음직스러운 빵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잊는 게 좋다. 요리를 망치는 방법,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어떤 일을 그르치는 경우의 수는 참- 많다. 더욱이 완결/성공의 조건이 지독히 까다롭고 동시에 유동적이라면, 실패는 그중 아무거나 하나만 틀어지면 되기 때문에 무척 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또 하나, 간신히 거머쥔 성취라도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평가하는 사람의 취향이나 문화의 차이를 비롯하여 일이 진행되는 동안 급변하는 세상 물정까지, 그야말로 나를 겨눈 거대한 음모가 있지 않고서야! 하여 크건 작건 공든 탑이 무너질 때마다 일일이 상처받지 않기로 했다.
생활이 그러하니 작업도 전시도 눈앞에 선하다. 어떠한 계획이라도 정말 완벽하게 실현할 수는 없다. 시간과 비용은 예나 지금이나 빠듯한데(아니 ‘유한한’ 자원이 충분했던 적은 있었나!) 실패를 발판 삼으면 다음에 더 잘할 수 있을까. 아마 그때는 다시 조건이 바뀌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융통성이라는 명분으로 목표치-성공의 기준-를 슬그머니 바꾸는 편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앞서 말한 ‘정성 들인 숯’이 본래의 재료값을 하려면 몇 가지 통과해야 할 관문이 있다.
1. 빵을 만들 의지가 있다.
2. 어떻게 만드는지 안다.
3. 변질되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것 없이 재료가 성하다.
4. 오븐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5. 그동안 전기/가스 요금을 성실히 납부하여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다.
6. 재료를 계량, 성형할 도구가 있다.
7. 반죽에 필요한 양손과 체력이 있다.
8. 발효를 기다릴 만큼 참을성이 있다.
9. 숫자를 읽을 수 있다.
10. 그 밖에 떠오르는 온갖 것들...
사실 위에 나열한 것 중 무엇 하나 충족되지 않아도 빵을 먹을 수 있다. 가까운 베이커리에서 사 오면 그만이다. 처음부터 ‘직접 만들어’ 먹기가 아니라 ‘먹는’ 행위가 목표였던 것처럼 생각을 바꾸면 그날의 뻘짓거리는 무효에 가까워진다. 물론 어질러놓은 주방을 정리하기가 썩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무얼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빵을 먹는데 성공했다는 사실이고, 만들기에 실패한 일은 없었던 셈 치면 된다. 이러한 합리화는 도처에 널려 있다. 다만 각각의 사연이 단순히 개인적 판단에 의한 것인지, 다수의 암묵적 합의인지는 상황에 따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합리화 찬스 이전에 폐기되는 시도 자체를 줄이기 위해서 나는 남의 눈을 상당히 의식하고 있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것,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전제/약속/규칙들을 우선순위에 두면 책임의 규모가 조금이라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일을 시작하기 전 항상 ‘하면 안 되는 것’부터 체크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변수에는 다른 잣대를 적용하거나 못 본 척 하는 식으로 음흉한 완벽주의를 고집한다. 실은 말도 안 되게 엉성하고 위태로운 것을.
실패가 감춰진 세계는 영 남일 같은 위인전처럼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이상하게-이상한 딜레마를 툭툭 건드리며 나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내어놓고 있다. 정상과 비정상, 성공과 실패를 구분하는 자는 누가 쥐고 있으며 그것은 누가, 언제, 왜 만들었을까?
작년에 이어 다시 뜨거운 여름과 함께 할 <평범한 실패>(2018.07-08)는 지금까지의 문제의식을 이어가며 태도에서 약간의 변화를 갖는다. 기존의 정적인 현상 제시에 움직임이 더해지는 식이다. 줌인-줌아웃을 거듭하며 다양한 거리를 담아보는 실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번에도 나는 일상의 양 극단의 중간지대를 거닐며 어련히 바스러지거나 휙 날아가 버릴 사정을 수집한다. 유물 발굴하듯 이야깃거리의 흙먼지를 살살 털고 관찰하는가 하면, 실패를 양산하는 ‘어떤 힘’의 이동경로를 멀리서 지켜보기도 한다.
나는, 모두는, 숱한 실패를 외면하거나 검증에 목을 매거나, 아예 아무도 가질 수 없도록 성공을 멀리 걷어차 버리기도 한다. 그 끝에 남을 의뭉스러운 자괴감이 과연 당연한 것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남의 밭에서 영원히 손에 닿지 않을 성공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업 노트 #1: 개인전 ⟪NO ONE IN CHARGE⟫, 2017
무릇 관리가 어려운 조직일수록 매뉴얼이 체계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의 상황에 대한 대비와 윗선에서의 지시사항이 촘촘하게 엮여 있어 사소한 행동조차 주춤할 일이 생기곤 하지요. 한 사람의 가치는 집단의 규모와 반비례하여 보잘것없이 작아집니다. 반면 불협화음의 책임은 어디에서든 손쉽게 개인을 향합니다. 모두가 합의한 룰을 미처 몰랐다는 것 또한 막중한 잘못이니까요. 그 '모두'에 본인이 포함될 리 없다는 사실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올라가고 내려가는 결재 서류는 마치 가족오락관 게임의 시한폭탄과 같아요. 한 사람이 담당하는 책임은 오로지 해당 양식과 그것이 머물렀던 시간 내에서만 존재합니다. 그래픽 툴에서 필요에 따라 일시적으로 체크했다가 해제하는 투명 레이어처럼 말이지요. 효율성을 위해 설정된 틀은 여집합의 여지를 철저히 배제합니다. 때로는 (꽤 자주) 형식이 내용을 전복하기도 하죠. 이러한 불합리의 축적은 의심이나 제안을 무력화한다는 점에서 위험합니다. 확장해서 보면 각자의 다른 사고[미감]가 하나의 기준으로 판가름 나기 때문에, 탈락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모서리를 잘라내는 노력이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데, 우리의 실패는 그 다음이 무엇일까요. 격변하는 사회 속에 좌절을 발판 삼아 차근차근 성장하는 여유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발언은 도발로, 질문은 무지가 되는 수직적 생태계에서 가장 큰 성공이란 눈에 잘 띄지 않는 평범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신 실패하지 않도록-실패했다는 이유로 이름을 잃지 않으려면- 최선을 다해 주어진 조건들에 적응해야 합니다. 규격-한계-단위-양식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시스템 내 책임의 프레임을 읽어내고 그 과정에서 익숙하기 때문에 옳은 것, 명분으로서만 잔재하는 것 등 시대의 요구와는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영역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어떤 글 #4: 시선에 관한 이야기 「Becoming Blind」, 2021
Becoming Blind
눈 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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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고객님, 결정하셨어요?
어… 어…… 조금만 더 생각해볼게요. 물고기는 처음이라.
뒤에서 쭈뼛대던 점원이 입을 열었다. 마트 마감 시간을 불과 몇 분 앞두고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다. 내가 빈 장바구니를 들고 40분째 어슬렁대던 차였다.
나는 시간을 때우는 외출에서 얼마가 되었든 반드시 후회할 지출을 하고야 마는 편이다. 판단력이 흐려져서건 보는 눈이 신경 쓰여서건, 눈앞의 정수기를 두고 물 한 병이라도 사서 마셔야 하는 그런 유형 말이다. 오늘은 거창하게 말하자면 생명을 거두는 결정을 앞두고 과하다 싶을 만큼 신중을 거듭하느라 이리되었다.
저 녀석 때문이다. 언뜻 검붉은 실크 조각이 담겨있는 것처럼 보이는 테이크 아웃 잔 하나가 발길을 붙들어 세워서다. 이름부터 멋진 베타. 만 원. 그 우아한 자태에 매료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정말 살아있는 게 맞는지 내가 요리조리 고개를 갸웃대는 모습에 점원이 알은체를 하고 다가왔다. 바로 엊그제 들여왔단다. 어차피 단독 사육이라 초보자가 부담없이 시작하기에 좋다고도 했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마치 찾는 물건이 있었던 양 슬쩍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적당히 구석진 매대 뒤에 서서 나는 무심한 듯 나뭇조각 하나만 넣어 장식한 수조를 내 작은 옥탑방에 갖다 놓는 상상을 해 보았다. 은연중에 드러나는 고상한 취향 같은 것에 잠시 우쭐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편 내가 집에 누굴 데려온 적이 있었나 하는 의문과 며칠 만에 죽어버리면 시체는 어떻게 처리할지 따위의 걱정이 엎치락뒤치락했다. 괜히 앵무새 쪽으로 갔다가 햄스터 쪽으로 갔다가 고양이 장난감까지 몇 번 만지작거리고 이내 베타 앞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영업 종료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한 차례 더 나오고서야 나는 허공에 민망한 눈인사를 남기고 서둘러 매장에서 나왔다.
‘반려ㅇㅇ’이라는 게 충동적으로 구입해버리는 이삼 천 원짜리 소품과 완전히 다른 장르여서 집에 돌아와 찬바람에 상기된 얼굴이 녹을 때까지 여러 가능성을 따져보았다. 앞으로 추가될 지출과 그로 인해 얻거나 포기할 것은 무엇인지, 나는 책임감이 있는 사람인지, 장기간 집을 비울 경우 이 친구를 부탁할 지인은 있는지 등 말이다. 의심이 짙어지는 사이 하필 꼭 맞는 자리가 눈에 띄었다. 사실 어디에 놓아도 잘 어울릴 것이다. 이렇다 할 살림살이가 없어 휑한 원룸에 화분이든 인형이든 갖다 놓을 생각을 안 한 것이 아니다. 단지 누구를 위한 ‘보기 좋음’인가 확신이 서지 않아 계속 미뤘을 뿐이다. 종일 팽개쳐 놓은 휴대전화에 그 흔한 광고 메시지 하나가 없다. 배터리만 야금야금 줄어 있다. 컴퓨터 전원을 켜고 화면보호기의 움직이는 이미지 목록을 살펴보았다. 큼직하고 선명한 픽셀 물고기가 모니터를 활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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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건물 사이의 간격이 한 걸음밖에 되지 않는 오래된 동네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집을 알아보러 다니던 당시, 저 멀리 북한산 전망에 혹했던 나는 건물을 빼곡하게 둘러싼 수십여 개의 창문을 보지 못하고 덜컥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버렸다. 많은 이들의 로망인 옥탑은 사실 시원하게 뚫린 시야가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다. 빨래를 널거나 담배를 태우거나 심지어 집안에서 어떤-그런-사적인 일을 하는 앞, 옆, 뒷집 사람을 수시로 목격할 수 있어서다. 원치 않는 풍경을 보는 것도 괴롭지만 나 역시 똑같이 노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집에 이사 온 처음 한두 달간 나는 악몽을 자주 꿨다. 사방에서 누군가 계속 나를 감시하는 느낌.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나 문고리가 철컥하고 돌아가는 소리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라 낮 시간까지는 정상적인 활동이 어려웠다. 베개 위치를 옮기고 가구 배치도 바꿔봤지만 도통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안전상의 염려 때문이라면 내 공간을 더 견고하게 걸어 잠그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문단속을 이중 삼중으로 하고 모든 창마다 신문지를 발랐다. 계절이 바뀌어 긴 소매 옷을 꺼낼 즈음에는 옥탑 안팎으로 CCTV도 설치했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밤 잠자리에 누워 녹화 영상을 보는 습관이 생겼다. 카메라가 움직임을 감지하면 앞뒤 10초가량이 하나의 클립으로 저장되었는데, 넋 놓고 시간을 보내기에 이만한 게 없었다. 외부 카메라는 내가 지내는 다세대 주택 앞 골목길을 비추었다. 출퇴근하는 사람들, 폐지 줍는 할아버지, 전봇대 아래 고양이 밥을 갖다 놓는 아주머니 등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대부분이었다. 가끔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비스듬하게 누워있는 나와 눈이 마주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그들의 응시는 이미 그 장소에서 사라진, 영상 속에만 남은 것이었다. 화면을 확대해 상대방을 빤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창문 너머 분간도 안 되는 실루엣에 움찔하던 이사 초기와 달리 내가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일에 참 열심이구나 싶었다.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닥친 어느 날이었다. 괜히 한번 외출했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나는 총총걸음으로 계단을 올라와 평소처럼 오늘 하루가 담긴 CCTV 영상을 틀었다. 스크린 속 잔뜩 웅크린 채 걸어가는 사람들을 향해 나는 짧은 인사를 건넸다. 오전 9시, 오후 4시가 지나 내가 집에 돌아오는 장면으로 넘어가면서 온몸에 스민 한기가 녹아내리고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제 누워야겠다고 생각하고 페이지를 닫으려는 차, 문득 화면 구석에 ‘반짝’ 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불길한 마음에 눈을 비비고 자세를 고쳐 앉아 마지막 장면을 다시 재생했다. 그것은 분명 어떤 시선이었다. 녹화 영상이 끝나고 Live Play로 바뀌었지만 작고 불규칙한 반짝임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벌떡 일어나 우당탕 소리를 내며 외부 카메라가 연결된 전원선을 휙 잡아 뽑았다.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나와 이 집은 점점 고립되어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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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서울로 이사를 온 국민학교 2학년(초등학교로 바뀌기 직전이었다)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족히 머리 하나쯤은 큰 키와 남다른 억양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의 놀림감 1순위가 되었다. 책상에 침을 뱉거나 옷을 벗기는 등 장난의 수위가 날이 갈수록 심해졌는데 그나마 다행인 점은 담임선생님이 나를 아픈 손가락처럼 살뜰히 챙겨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당연히 어떻게든 더 예쁨받을 궁리를 했을 것이다.
하루는 개구리알을 부화 시켜 오는 숙제가 주어졌다. 동네에 제법 큰 하천이 있어서 알과 물을 떠다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그리 어렵지 않은 과제였다. 공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는 으레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 한 마리조차 길러본 적이 없었기에 신이 나서 그날로 개구리알을 채집해 왔다.
몇 주 뒤 나는 같은 반 학생들 중 가장 큰 올챙이를 제출했다. 대가리가 팥알만 한 다른 아이들의 올챙이보다 내 것이 월등히 컸다. 뒷다리는 물론이고 앞다리까지 삐죽 나온 그 친구가 무척 자랑스러웠다. 그날만큼은 덩치를 가지고 비아냥대는 야속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신경 쓰이지 않았다. 종례가 끝나고 교실 뒤편 햇살이 잘 드는 사물함 위에 작은 어항이 놓였다. 40여 마리의 올챙이가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밥도 거르고 일찍 등교한 나는 깡총대며 어항으로 향했다. 매끈하게 날이 선 네모난 수조가 시꺼멓게 꿈틀대는 올챙이로 그득했다. 기대에 가득 찬 표정으로 지금은 이름도 잊어버린 그 꼬맹이를 찾아보았다. 바닥 모서리에서 배설물과 섞여 하얗게 뼈만 남은 시체를 발견했을 때, 순간 역한 물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듯했다. 나는 얼굴이 일그러지며 메스꺼움에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작은 괴물들이 끔찍한 일을 벌인 것이다.
서럽게 울었던가, 선생님에게 조르르 달려갔었나 모르겠다. 당시에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둔 걸 보면 스스로를 대입해서 생각했던 것 같다. 눈에 띄는 행동에 대한 경고랄까. 결과적으로 나는 친구를 사귀지 않았다. 이것 말고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조용히 삭이는 게 언제나 나았다. 종종 선생님께 전달했던 흰 봉투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내 올챙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결말을 맞았을 수도 있다.
이제 와서 누굴 원망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나도, 어린 악마들도, 그 선생님도 각자의 입장에서 최선이었을 것이다. 중,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생이 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무기력함을 학습했다. 봤어도 못 본 척, 있는 듯, 없는 듯. 이 괴로운 평정심을 위해 내려놓은 것들이 아깝지 않다. 그러니 내가 당신을 보지 못한다고 서운해하지 않길 바란다.
어떤 글 #3: Love Sync 우리는 서로의 행복이자 고통이다, 2021
* 서울시-문체부 공공미술프로젝트 ⟪Reflect⟫ 연계출판물 『문득 떠오르는, 그 영화의 퍼즐: 플래시백_서울 모퉁이(1960-1969)』 수록
금요일 오후, 제이는 의자에 쏟아질 듯 걸터앉아 모처럼 찾아온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일 주일 넘게 절절 끓던 바깥 공기가 살짝 식었나 싶을 만큼 하늘은 적당히 흐렸고 얼음 잔에 맺힌 이슬이 더 이상 바닥을 흠뻑 적시지 않을 정도로 계절이 바뀌는 중이었다. 그는 두 눈을 감고 탁상시계의 초침 소리에 맞춰 손가락을 까딱댔다. 매 초의 움직임이 미세하게 차이가 있는 것 같았지만 아무렴 무슨 상관일까.
그럴듯한 직장이 없어도 늘 바쁜 프리랜서에게 무엇을 하고 있든, 몇 시가 되었든 모든 연락을 받는 것은 기본 소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제이는 오히려 보통의 나인 투 식스(nine to six)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는 새벽에 방해받지 않고 작업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었던 밤샘 작업으로 주말 마감인 원고를 일찌감치 전송한 뒤 해가 꺾일 때까지 늘어지게 자고 방금 막 일어난 참이었다. 이제 거래처의 퇴근 시간만 무사히 넘기면 토, 일, 월요일 아침까지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다섯 시 사십 분. 휴대전화 진동이 네댓 번 울리다 멈췄다. 순간 그는 가슴이 철렁 했다. 다행히도 거래처가 아닌 익숙한 이름의 발신자였다. 그가 특별한 용건 아닌 일로 단번에 통화하기 어렵다는 걸 잘 아는 사람이었다. 제이는 전화기를 뒤집어 책상 저쪽 끝으로 밀어 놓았다. 꼭 지금 받지 않아도 되는 전화다. 서운해 하지 않을 사람이다.
여섯 시가 될 때까지 그는 컴퓨터 앞에 그냥 이렇게 넋 놓고 앉아 있어 보기로 했다. 금요일 저녁은 누구라도 퇴근을 서두를 것이다. 그는 중요한 요청이라면 진작 연락이 왔을 테지 생각하며 담담한 척 입가에 슬쩍 미소를 지어 보았다. 이내 문자 수신을 알리는 진동이 짧게 윙 윙 들렸다. 사실 누군지 알만한 메시지에 답장하는 게 대단히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니었다. 단지 요즘 그 사람과의 대화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머리가 지끈거렸으므로 당장은 싫었다.
마땅히 다른 할 일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말하자면 업무 모드가 탁 하고 꺼질 때 갑자기 본인의 일상을 마주하며 느끼는 무기력감 같은 게 컸다. 제이는 결정권을 가진 자리에서 최대한 불성실하고 싶었다. 을이 아닌 입장일 때는 좀처럼 상냥함을 꺼내 들지 않았다. 그는 멀찌감치 밀어 놓은 휴대전화와 빈 모니터 화면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골목길을 지나는 트럭의 뭉개진 메가폰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자유의 시간이 되었다.
제이는 자신을 위한 소일거리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여유 시간에는 청소가 딱인데 아직 해가 완전히 떨어지지 않았으니 땀이 덜 나는 종목의 정리정돈을 선택했다. 그는 컴퓨터 전원을 켜고 빈 물 잔을 채워 자리로 돌아왔다. 마감이 휩쓸고 지나간 바탕화면에 온갖 아이콘이 가득했다. 쓰임이 기억나지 않는 파일부터 하나 둘 삭제하기 시작했다. 급한 대로 세 번 네 번 다운받은 각종 설치파일이나 그저 귀여워서 캡처했던 수달 사진도 Shift 키를 더해 과감하게 날려버렸다.
빼곡하던 화면은 이가 빠진 것처럼 금세 구멍이 성성해졌다. 내친 김에 너저분하게 흩어진 폴더들도 정리했다. 규칙을 정해 이름을 변경하고 우선순위를 매기면 뭔가 답답한 기분도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었다. Del 버튼을 신경질적으로 두드리고 마우스 스크롤도 요란하게 굴려보았다. 혼자니까 괜찮다. 그 사람의 기분을 망칠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대충 끝났을까, 화면 한쪽 구석으로 눈을 돌린 제이의 미간이 잠시 일그러졌다.
이것은 예전에도 앞으로도 어찌할 도리가 없을 것 같았다. 섬처럼 홀로 뚝 떨어진 폴더 하나. 그는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먹먹해지는 이 작은 저장소를 그동안 처리하지 못했다. 오늘도 주저하는 눈치였다. 제이의 표정이 복잡했다. 이 안에 든 데이터는 연인 케이와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추억 이전에 제이 개인의 역사이기도 했다. 소원해진 마음에 대한 원망과 죄책감 때문에 평소 잘 열어보지 않았다.
뭐가 우스운지 모를‒이름조차 처음 그대로인 그 폴더 안에는 여태 그가 케이와 주고받은 사진이며 영상, 음악, 메시지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특히 눈만 마주쳐도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침은 또 언제 삼켜야 할지 전전긍긍하던 그들의 연애 초 모습은 아무나 붙잡고 자랑해도 될 만큼 정말 예뻤다. 말 그대로 행복으로 충만했던 순간이지만 그 때를 회상하는 시간은 어느새 고통에 가까워져 있었다.
대부분의 사진이 여백 없이 두 사람의 미소로 꽉 채워져 있었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연인의 얼굴은 과거형 현재에 멈춰 오늘을 전혀 예상하지 못 하는 표정이었다. 단서랄 것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도 제이는 그 사진들을 언제, 어디에서 찍은 것인지, 전후로 무엇을 먹었는지 까지 전부 기억하고 있다. 입고 있는 옷가지, 사진의 색온도, 수풀의 종류, 건물의 높낮이와 도시의 분위기가 그 날의 동선과 감정 상태를 가늠할 수 있게 했다. 케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느새 자리를 잡고 파일을 하나하나 넘겨보던 그는 부산 광안대교 야경 사진을 발견했다. 인물 하나 없는 새까만 사진이라 언뜻 실수로 촬영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어찌 고이 보관을 해 온 모양이었다. 일정한 간격의 불빛만 점점이 담긴 이 사진은 2년 전 제이가 케이와 덜컥 같이 살기로 약속한 날에 찍은 것이다. 만난 지 고작 6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당시 두 사람에게 정상 연애의 다음, 다다음 과정이란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 제이는 그 날의 벅찬 감정이 온전히 자신의 것인지 아니면 으레 그러려니 하는 ‒영화나 드라마, 소설 따위의‒ 대리 경험이 더해져 부푼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광안대교 앞에서 누가 무슨 얘길 했었는지를 돌이켜 보았다. 한편 깜깜한 해변에서 자신은 남은 인생의 동반자를 맞이할 만큼 성숙한 사람이었을까, 그리고 평범한 연인이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이것뿐이었을까 같은 현 시점에서 의미 없는 질문의 꼬리를 거듭 밟았다. 어두워진 모니터 표면에 그의 현재 모습이 비쳤다. 표정 없는 얼굴이 증명사진처럼 납작하게 붙어 있었다.
제이는 한쪽으로 치워놨던 휴대전화를 들어 ‘부산 여행 기억나?’라고 메시지를 썼다 지웠다 전송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메시지를 보내면 아마도 아까는 뭐 하느라 연락이 안 됐는지 해명하는 장문의 문자를 써야 할테고, 글짓기를 채 마무리하기도 전에 무슨 소릴 하려고 옛날이야기를 꺼내느냐고 묻는 전화가 올 게 뻔했다. 통화는 목 막히는 침묵으로 강제 종료될 예정이었다. 최근 계속 그랬듯이.
“좋은 아침이야, 제이. 우리 그만 만날까?”
케이는 작년부터 이미 몇 차례 제이에게 이별을 고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통보라기보다 제안에 가까웠다. 제이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지쳐있었다. 자신의 연인은 항상 같은 곳에 같은 모습으로 있었으므로 관계를 지키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낼 필요가 없었다. 여전히 서로를 염려하고 그리워했지만 표현에 차이가 있을 뿐 그 마음이 각자를 좀먹기 시작한지 오래였다. 함께 지내기로 한 뒤 취향이나 생활 방식 등의 차이로 투닥거린 적은 있어도 이만큼 날을 세우게 될 줄 몰랐을 것이다.
상대에 대한 마음 씀이 압박으로 바뀌었고 필요 이상으로 서로의 일에 개입하거나 닥치지 않은 사건에 지레 겁을 주는 경우가 잦아졌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게 미안하지 않을 지경에 이른 어느 날 케이는 처음으로 헤어지자는 말을 꺼냈다. 아직 침대에 누워 어제 놓친 시시껄렁한 웹툰을 보고 있던 제이는 아침 댓바람부터 무슨 소릴 들은 건가 어안이 벙벙했다. 매일 맡는 냄새였지만 갓 내린 커피향이 왠지 역하게 느껴졌다.
제이는 케이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 날도, 그 다음에도 매번 어려운 이야기를 붙잡고 매달려 협상을 요구했다. 그는 언제까지고 처음처럼 설렐 수는 없지 않느냐고 설득했다. 좋았던 기억들을 들추며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작아진 건 아니라고도 했다. 정말 꺼내놓고 싶었던 문장들은 애써 눌러 담으며 달콤한 말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고도 했다. 익숙지 않은 상황과 역할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그의 변명에 긴 정적이 이어졌다.
“노력해 보자. 난 끝내고 싶지 않아.”
제이가 말을 이었다.
“솔직히 난 네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 오히려 당신이 너무 순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화도 났어.”
“무슨 소리야?”
“우리 지금 그냥 연애하고 있는 거 아니잖아. 동거인이고 보호자야.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책임져야 하는 관계라고.”
현실적인 단어들이 튀어나오자 케이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케이는 감정에 대해 말했고 제이는 현실을 이야기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신중하고 이성적인 듯 했지만 서로의 공을 전혀 받아치지 못 했다.
“제이, 그런 관계가 되면 사랑은 끝나는 거니?”
“와... 맙소사. 넌 정말 이기적이야. 나는 이렇게 노력하는데.”
“무슨 노력을 했는데. 인정해, 그냥 마음이 식었다고.”
“어떻게 항상 처음 같을 수 있어? 마음이 식으면 바로 헤어지는 거야? 계속 만나거나 헤어지거나. 둘 중에 선택해야 돼, 지금?”
제이와 케이 모두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처음으로 언성을 높여 싸운 그들은 다음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 자리 그대로 서로를 노려보기만 했다.
제이는 몸을 돌려 눈에 띄는 대로 옷가지와 간단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뭐 하자는 거야? 이대로 나가버리면 정말 끝이야!”
“그만해. 오늘 더 이상 얘기하면 안 될 것 같아.”
“혼자 편하자고 그러는 거지? 당신 이렇게 피해버리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
“있다가 중요한 인터뷰 있어. 정말 중요한 거야. 이 정도는 이해해줘.”
제이는 들으라고 더 크게 문을 쾅 닫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닫힌 문 너머로 케이가 지르는 고함 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은 차갑게 식었고 다른 한 사람은 불같이 달아올랐다.
제이와 케이는 연인으로서 계산 없이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서로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자신이 잘 다루는 프로그램을 가르쳐 주었고 커피를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 운전할 때 코너링을 부드럽게 하는 방법이라든지 클라이언트와의 소통에서 벽을 만났을 때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는지 등의 경험에서 쌓인 팁을 알려주었다. 좋은 기회가 생기면 기꺼이 공유했고 함께 축배를 들었다. 무엇보다 인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최소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지가 생기는 생산적인 관계였다.
눈만 마주치면 불꽃이 튀던 자극적인 연애가 시작이었다면, 그들은 무거운 짐을 말없이 나눠 드는 관계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어느 쪽이 ‘진짜 사랑’에 가까운지 정의할 수 없어도 제이와 케이는 각자의 속도를 존중하려고 했다. 한 명이 ‘쿵’ 했을 때, 기다리다 보면 언제가 되었든 기필코 ‘짝’ 소리가 나는, 쫓기지 않는 사이여서 좋았다. 세상이 정해 놓은 사랑의 단계에 진입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첫 번째 다툼은 두 사람 모두에게 트라우마가 되었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머릿속에서는 같은 장면이 계속해서 재생되었고 둘 다 이 날의 기억을 떨치기 위해 노력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제이와 케이는 위태로워 보이는 관계를 조심스럽게 유지해 보기로 했다. 그들에게 사랑은 행복이자 고통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남아 날 관계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래 된 추억 상자를 두고 맴돌던 커서가 시스템 종료를 클릭한다. 이 폴더를 삭제한다고 마음이 가벼워질까. 아픈 기억을 없애는 일이 과거의 기억으로 현재를 위로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제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크게 한번 심호흡을 하고 케이에게 전화를 건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이다.
어떤 글 #2: 「표준의 탄생-에필로그」, 2018
잘 지내셨나요?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 팔랑팔랑한 소책자는 지난겨울에 챙겨가신 좀 수상한 소..설..?의… 부록입니다.
『표준의 탄생』은 2018년 1월 12일 서울문화재단 유망예술지원사업 쇼케이스전(@탈영역 우정국)을 통해 선보인 이야기입니다. 사실 딱 들어맞는 이름이 없어 일단 소설이라고 했지만, 모호한 정체에 여태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그런 글이에요. 알고 보면 깨알 같은 장치가 많은데, 한참 지나고서야 바람 빠진 농담들로 눈에 들어와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 글은 예상보다 상당히 긴 숙성기간을 거쳐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어요. 일을 매듭짓기 위한 강한 동력이 없어서인지 지지부진에 뒤집어엎기 일쑤였거든요. 뒤늦게 고백하자면, 인쇄소에 파일을 넘기기 직전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일순간 아무짝에 쓸모없어 보여서 ‘그냥 텍스트를 전부 빼고 빈 노트만 뽑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어요. 당연히 에필로그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고요.
어느덧 한겨울의 전시가 끝나고 6개월가량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저는 여유 있게 쉬었습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연루된 전시는 처음이라 긴장감과 피로도가 상당하더라고요. 그사이 패대기쳤던 건강을 가장 먼저 챙겼고, 오랜만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불안함을 느끼기도 했어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손발이 오그라들던 부끄러움은 우려한 것보다 금방 지워졌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 죄책감이 밀려들어 왔지만요.
새삼스럽게 책이 잘 있는지 안부를 물어도 될까요. 아니, 읽어보셨는지부터 여쭤봐야겠네요. 저는 처음부터 회의적이었거든요. 과연 절반이나 읽힐까. 폐지로 버려질 때까지 손이 몇 번이나 갈까. 이런 종류의 불신은 아마 제가 타인의 창작물을 대하는 가끔의 무성의함에서 기인했겠지요. (사죄합니다.) 어쨌든 보잘것없는 AS 서비스에 관심을 가지고 응해주시는 분들께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자, 그럼 오늘 이 장소까지 오기 전 상황을 먼저 복기해 봅시다. 『표준의 탄생』은 당신의 공간 어디에 놓여 있(었)나요? 그리고 그 책은 당시의 전시와 현재의 전시 각각에 무슨 관련이 있(었)을까요?
2015년에서 2016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서촌에서 책방(인쇄물 가게라고 하는 편이 맞지만 복삿집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어서 이렇게 칭하겠습니다.)을 운영하는 오랜 친구가 저에게 복잡한 표정으로 누런 봉투 하나를 건넸어요. 낡고 닳은 봉투는 할머니의 옷자락처럼 부드러웠고 구김 아닌 주름을 만지작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좀 곤란한 단골손님이 아버지 유품이라며 원고지를 맡기고 갔다고 했어요. 친구는 그것을 흡사 귀신 들린 무엇처럼 찜찜하게 가지고 있다가 저에게 넘긴 겁니다. 네, 취향 저격 맞습니다. 정말 원혼이 씌었다면 그만큼 설레는 일도 없었을 거예요.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원고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고인은 여기에 무엇을 쓰려고 했을까요. 안타깝지만 저는 깍둑 모양의 표에 아련한 추억도, 별다른 감흥도 없는 세대의 사람입니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글짓기라면 치를 떨었기 때문에, 이 재료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뻔함에도 자꾸 다른 생각을 하려고 애를 썼어요. 단독으로 사용하기엔 너무 얇고, 출력용 이면지도 못 되는 애매한 크기. 한동안 궁리를 하다가 도입부만 끄적대기를 몇 개월. 에라 모르겠다, 저어 구석 어디에 던져놓고 실수로 버리게 되더라도 그 또한 운명이려니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마음을 다잡은 것은 2016년 9월,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인터랙션의 개관전에 참여하게 되면서였어요. 저는 오늘날의 삶에서, 예술에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에 관한 2인전의 한 섹션을 담당해야 했습니다. 그 무렵은 대학원을 졸업한 지 1년이 넘어가고 있었고, 아무 계획도-러브콜도-연인도!- 없는 심심한 시기였어요. 유일한 전시 스케줄이 잡힌 이상 보류해 왔던 작업을 하나둘 털어야겠더라고요. 원고지는 어쩔 수 없이… 소설로 가닥이 잡혔습니다. 이때 디스플레이 방법과 글의 제목이 정해졌어요. 하지만 그게 전부였습니다. 제목 뒤에 ‘_intro’를 달고 딱 한 장 분량만 공개한 전시 ⟪환상회로⟫ 이후, 비장하고 선언적인 첫 페이지는 가뿐하게 파기되었습니다.
그 후로 다시 1년. 이번에는 거부할 수 없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전시 지원금으로 책을 낼 수 있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서울문화재단의 서포트로 소설가 멘토 찬스까지 생겼습니다. 예로부터 불안한 의지는 일단 널리 알리라고들 했습니다. 출간비에 제법 큰 비중을 실은 예산 계획서도 책임을 져야 했으니, 글을 완성하겠다는 다짐은 더 이상 혼자만의 약속이 아닌 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일의 첫 삽으로서 그때 그 원고지를 한참동안 찾아야 했어요. 천만다행으로 그것을 방치한 이후 완전히 잊고 지낸 덕분에 한 장의 소실도 없이 발굴할 수 있었죠.
이미 한번 실패한 글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이전과 다른 접근법이 필요했습니다. 본디 글 쓰는 게 직업인 사람을 흉내 내는 것은 아니다 싶었어요. 틈틈이 코멘트와 응원을 보내오던 소설가님은 제가 잘 알고 잘 하는 방법에 집중하라고 제안했어요. 저는 예나 지금이나 하면 되는/안 되는 일과 적정선[기준점]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시각예술 생산에서 견지해 온 방법론을 글쓰기에 적용하면 창작의 고통을 덜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내가 바꿀 수 없는, 반드시 수용해야 하는 조건부터 점검하기로 했습니다. 사물로서의 원고지 자체와 그것이 공개되는 환경[전시] 말입니다.
같은 회사 제품으로 낱장을 모아 놓은, 시중에서 흔히 파는 200자 원고지. 뒷장이 아주 살짝 비치는 평량 60~65g/m² 안팎의 종이 총 127매. 가로세로 223*153(±0.5)mm로 아마 신국판이라고 불리는 규격에 약간의 재단 오차가 더해진 모양이었습니다. 검색을 해보니 이 정도면 단편과 중편의 중간쯤이라는데, 게시물 작성자마다 제각각의 기준을 언급하고 있어 구분이 크게 중요하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단, 원고의 분량은 스토리의 규모와 서사의 속도를 결정하기 때문에 한 가지만큼은 확실해졌죠. 한국판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은 못쓰게 되었습니다.
초반에는 분량을 늘리는데 진땀을 뺐어요. 소제목과 할당량, 핵심 사건 등을 모두 정해두었는데도 이상하게 마지막 페이지는 자꾸 앞으로 넘어오더라고요. 원고지를 제대로 써서 없애려면 글을 쓰는 일보다 지우는 일에 더욱 공을 들여야 했어요. 한 장 한 장 허투루 사용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소설의 모든 페이지는 200자 원고지 안에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도록 타이트하게 구성되었습니다. 마뜩한 단락 구분이 없는 대신 각 장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문장을 자르고 표현을 다듬었어요. 본업인 입체, 설치 작품을 제작할 때 ‘어떻게 하면 더 잘 버릴 수 있을까?’부터 생각하는 태도와 같은 맥락이에요.
컨셉이 명확하게 정리되니 진행이 한결 수월해졌어요. 문장 하나당 여전히 기나긴 버퍼링이 있었지만 소설의 바깥 세계를 의식할 여유가 생겼거든요. 예를 들어, 전시장 공간 연출과 기존 작업의 이슈를 반영하는 방법으로 작품 제목을 소설 곳곳에 활용했어요. 또한 텍스트가 시각예술과 유사한 소화 기관을 거쳐 갈 수 있도록 한 번에-한 덩어리로 읽히는 간결하고도 빠른 리듬의 문장을 사용했고요. 그 와중에 집중력이나 인내심이 과하게 필요하면 더욱 가볍게 버려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어요. 그건 마치 전시장 입구에서 몇 초간 간을 보고 자리를 휙 떠나버리는 관람객을 지켜보는 허탈함과 같을 거예요. 작가의 전전긍긍에도 불구하고 끝내 마지막 장을 털어내지 못했다면… 그것은 제 한계인가 봅니다.
『표준의 탄생』은 픽션과 논픽션 중간 어디쯤의 글입니다. 제 아버지는 원고지의 주인이 아니며 지난 주말에도 반주를 즐기셨습니다. 독자 대부분이 제 정체성을 화자에 투영하겠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화자의 이름, 성별 같은 구체적인 정보는 의도적으로 생략되어 있어요. 몇 안 되는 등장인물들의 이름 역시 중성적(neutral)이고요. 이는 한숨에 빠르게 읽히도록 구성한 페이지, 문장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기준대로 읽으시오.”
제가 작업 노트나 압박 면접 상황에서 반복 사용하는 어휘들이 있습니다. 기준, 조건, 한계, 양식, 규격, 합의, 기타 등등… 이들은 겉보기에 매우 견고하지만 개인의 의지에 따라 의외로 쉽게 휘어지기도 합니다. 다만 이 단어들이 자주 나타나는 장소, 위치 때문에 왠지 극복해야 할 것 같은-반발심을 불러일으키죠. 하지만 글쎄요. 우리는 투덜투덜하다가도 시스템에 은근슬쩍 기대면서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너무 거창한 제목인 『표준의 탄생』이 그냥 그런 어느 집 이야기인 것처럼 말이죠.
어떤 글 #1: 『표준의 탄생』, 2016~2023
160408 하찮은 속사정
151122 평범한 순간
151123 아무 일도 없었다
151124 ( ) 버리는 날
180104 표준의 탄생
20160408
하찮은 속사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한 달이 조금 넘어간다. 이 집의 시계는 이제 나를 축으로 움직인다. 복작대던 새벽 풍경이 조용하다. 식기가 한 세트 줄었고, 쉬어서 버리는 국이 생겼다. 바깥바람이 꽤 부드럽다. 계절은 알아서 온다. 아침 열 시쯤 앓는 소리로 시작하는 하루.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냉동실의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굳어있던 공간이 녹기 시작한다.
손가락으로 3분을 헤아리며 주방과 다용도실을 어슬렁거린다. 문득 떠오르는 빈자리가 아니라면 매년 약속처럼 찾아오는 날씨가 마냥 반갑다. 독기가 빠진 공기에는 적당히 수분을 머금은 흙과 갓 터진 싹의 풋내가 섞여 있다. 시간은 큰 단위일수록 속도가 빠르다는 말을 새삼 느낀다. 나의 긴 하루와 아버지의 짧은 3개월. 그가 보지 못한 계절이 거실까지 들어와 있다.
안방에서 나온 어머니가 냉장고 속 반찬통을 꺼낸다. 우리 집의 식사는 채우기보다 비워내기에 가까워져 있다. 어제는 작년 새해 선물로 들어온 김을 처리했다. 아버지의 흔적들. 그중 가장 오래 남게 될 이 작은 아파트에서 나의 염치는 그를 지워내는 일에 의연할 수 없다. 매달 받아온 용돈 역시 고스란히 남아있다. 통장 거래내역 중 마지막 입금자명은 ‘감기조심’이다.
어머니와 밥을 반씩 나눠 담고 그 위로 콩나물무침, 깍두기, 통조림 참치를 먹을 만큼 덜어 옮긴다. 우리는 마주 앉지 않는다. 부엌 식탁과 거실 소파, 각자의 자리가 있다. 더 이상 어머니는 자식이 무얼 얼마나 먹는지 몸을 기울여 들여다보지 않는다. 두 사람의 눈이 뉴스 채널에 고정된다. 다음 소식으로 넘어갈 때마다 앵커의 목소리가 풀어진다.
내일은 좀 더 포근한 봄 날씨란다. 세차, 외출 지수 둘 다 나쁘지 않다. 빈 밥그릇을 들고 일어난다. 원래 그릇을 늦게 갖다 놓는 쪽이 설거지 담당이다. 아직 한 숟가락 남은 어머니에게 그냥 내가 하겠다고 말한다. 어제 버린 라면 건더기가 배수구에 그대로 있다. 싱크대를 깨끗이 비운 뒤 마른행주로 주변 물기를 훔친다. 이것은 일을 벌이기 전 티끌만 한 의식이다.
예정된 일인 양 오래된 컴퓨터를 켠다. 위잉- 뚜뚯. 지잉- 달달달… 검은색 도스 화면에서 XP 로고가 있는 푸른색으로 바뀌기까지는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잠시 망설이다 마우스를 매우 조심스럽게 움직여 디스크 조각 모음을 실행한다. 이 물건은 불과 몇 년 사이에 할 수 있는 일이 눈에 띄게 줄었다. 3% 진행에 5분 정도, 앞으로 2시간 넘게 걸릴 것이다.
다음으로 빨랫감을 분류한다. 제멋대로 던져둔 옷가지를 주워 뒷덜미와 겨드랑이 쪽 냄새를 맡는다. 섬유 유연제 향이 희미하게라도 남아있으면 제 자리로, 아닌 것은 문지방 쪽으로 던진다. 양말은 아예 코에 바짝 붙여 킁킁대야 알 수 있다. 입구에 쌓인 옷더미를 양팔 가득 쓸어안아 세탁기에 밀어 넣는다. 14㎏가 꽉 들어차 문이 잘 닫히지 않는다.
컴퓨터와 세탁기가 작동을 멈출 때까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조금 여유를 갖는다고 큰일 날 일도 아니지만 마감을 정해두지 않으면 금방 의욕이 떨어지고 만다. 더욱이 오늘은 평소 같은 청소가 아니다. 나의 독립과 함께할 짐을 꾸릴 겸 아버지 유품도 정리 작정이다. 한 달 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는데 당최 뭘 했는지 모르겠다. 다소 늦은 게 맞다.
장례는 지난달이었다. 생각보다 절차가 어렵지 않았다. 아버지가 미리 준비해 둔 상조 업체에서 거의 모든 과정을 도맡았다. 얼마짜리 옵션에 정성의 단계를 고를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본인이 웬만큼 뒷정리를 마친 상태라 어머니와 나는 차분하게 안내를 따르고 서명만 하면 되었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성화였다. 2~30년 전 인연이라는 이들의 위로나 손길은 좀처럼 적응할 수가 없었다.
책상 위에 방치해둔 서류를 들춰보니 ‘아차...’ 이미 달력이 넘어간 일이다. 두어 차례 놓친 행정실 전화가 이것 때문이었나 보다. 아마 다시 출근하는 날은 내 자리를 빼는 날이 될 것이다. 이런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다. 직계존속 사망 휴가는 고작 일주일. 그나마도 정규직에 해당하는 얘기다. 충분히 마음을 추스르고 나오라는 말은 아무 말도 아니다.
나는 늘 시간에 쫓겼다. 퇴근 전 결코 마칠 수 없는 업무에 질질 끌려다녔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발바닥 티눈보다 손끝의 가시가 먼저라고 미루는 것은 계속 미루게 되었다. 가장 마지막 순위는 언제나 가족이었다. 훌쩍 떠났다가 아무 때고 돌아오면 그만이던. 하지만 서른 넘어 뒤늦은 가출을 감행한 게 결국 예정에 없던 이사까지 이어졌다. 불과 몇 달 사이의 드라마 같은 전개다.
지난해 12월 급작스럽게 더부살이를 시작한 면목동 반지하 월세방이 내 명의로 넘어오게 됐다. 결정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기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서 다시 오지 않을 하늘의 뜻이구나 싶었다. 사실 나는 누구를 부양할 능력은 물론 내 몸뚱이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 사람이라, 계약-신고-제출-증명 같은 어른의 일을 직접 마주한 적이 없었다.
말로는 어머니 혼자 남는 게 마음에 걸린다고 하면서도, 늦었지만 눈치껏 제 갈 길을 찾는 게 최소한의 양심이라고 생각했다. 자연계에서 성장이 끝난 개체는 자연스럽게 이소를 한다. 부모님과 나에게 ‘성장의 종료’란 무엇이었을까. 적어도 그 모양이 같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사회에서 무얼 하는 사람이든 대면할 수밖에 없는 일들에 있어 나는 ‘○○생’ 딱지를 떼는 게 두려웠다.
그런데 이렇게 대뜸 내 공간을 갖게 되어 버린 것이다. 앞으로 각종 세금과 생활용품, 음식물 쓰레기에 엄지손가락만 한 꼽등이까지 온전히 나의 책임이다. 물론 임차인으로서. 안쓰러운 얼굴의 방문자에게 기꺼이 방 한 칸을 내주었던 친구가 고향 농장 일을 돕겠다고 도시 생활을 정리한 덕분이다. 이쪽도 녹록지 않은 조정 기간을 거쳤다고 했다. 친구의 망가진 기타는 내가 버려주기로 했다.
각박한 서울살이에 500/35면 넙죽 절을 하란다. 3층에 사는 건물주는 세입자에게 무심한 만큼 본인 건물에도 신경 쓰지 않아 등본에 기재된 연식보다 훨씬 낡고 허름해 보였다. 건물 내부 모든 모서리마다 거미줄이 그득했다. 혼자 유난을 떨고 청소해 봤자 그때 잠깐일 뿐, 아쉬운 사람이 적응하는 법이다. 살아 움직이는 것들에 이름을 붙이고 숨바꼭질하며 나름의 재미를 찾아가기로 했다.
어쨌든 살아보고 결정하다니 운이 좋은 편이다. 수년 전 홍대 앞 월 43만 원짜리 고시원에 어머니가 찾아오셨을 때, 눈물이 그렁그렁했던 그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A4 크기도 안 되는 창문 때문에 5만 원 더 얹어줘야 하는 프리미엄 실은 간신히 광합성과 산소 보충이 가능한, 그래서 딱 그만큼만 우쭐해도 되는 방인지라 당시에는 나름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반지하 얘기는 하지 말아야겠다.
선별한 빨랫감을 쏟아붓고 눈보다 빠른 손으로 버튼을 눌러 세탁을 시작한다.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소리를 뒤로한 채 설명할 길 없는 찜찜함을 바지에 슥 문질러 닦는다. 빈손이 멋쩍어 뭐라도 꺼내보자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본다. 항상 그럴만한 핑계로 들여다보지 않았던 시간의 퇴적물이 어느새 투명에 가까워져 있다. 언제부터─어디에─무엇이─얼마나─왜 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의 짐은 버릴 것이 태반이다. 결정 장애나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습관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여하튼 많아도 너무 많다. 얻어온 것, 보상성으로 충동구매한 것, 오늘 같은 위기를 이겨낸 것과 과거의 나만이 알고 있는 것. 근 몇 년간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아 본래의 용도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상한 물건도 제법 될 것이다. 누구도 궁금하지 않을 사연 있는 쓰레기랄까.
현장 일을 관둔 뒤로 먹지도 못할 잡동사니를 모두 처분한 줄 알았지만 오산이었다. 나의 ‘만약’에 빈틈이 허락된 적은 없다. 무제의 박스에서 부지런히 쟁여온 것들이 속속 나온다. 꽁꽁 싸맨 비닐을 헤쳐보니 딱딱하게 굳은 퍼티가 나온다. 요만큼이 부족해 쩔쩔매는 어느 날 ‘내 이럴 줄 알았지!’하고 자신 있게 꺼내 쓸 요량이었나 보다. 정말 이 물건이 절실한 상황은 원치 않았던 것 같다.
아이 주먹만 한 녹색 플라스틱 용기는 확실히 지난 세기 물건이다. 옆면에 양각으로 ‘문방풀’이라는 이름이 새겨있다. 고무 동력 비행기나 방패연을 만들 때 사용한 뒤로 만져볼 일이 있었나 싶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보관 기간을 가늠할 수 있다. 꽉 닫힌 것도 아닌, 살포시 얹어져 있는 뚜껑에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성분이 녹말과 물이라고 알고 있다. 그다음은 상상하지 않겠다.
나도 모르게 초등학교 졸업앨범까지 꺼내려던 차, 일일이 추억을 추억하다간 안 될 것 같아 멈칫한다. 못 쓰고, 안 쓰고, 촌스럽고, 더럽고, 호환 안 되고, 뭔지 모르겠고…. 이것들은 내 친구가 아니다. 네모반듯하지 않은 패키지 위주로 한쪽 구석에 산을 만들어 본다. 첫 번째 더미는 쓰레기봉투 하나를 그득 채우며 남김없이 폐기다. 다음 봉투로 넘어갈수록 결정이 과감해진다.
평소 손이 닿지 않던 곳에 시선이 멈춘다. 책장 위로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찐득한 때가 묻은 군청색 상자. 윗면에 ‘전통 추석 선물 셑트’라는 금박 글씨가 박혀있다. 크기로 보아 양쪽으로 식용유 하나씩, 가운데 통조림 햄 3개 정도가 들어있던 것 같다. 빡빡한 뚜껑을 여니 이면지, 지난 수업 자료, 1000 피스 퍼즐 박스가 숨죽인 채 있다. 작은 움직임에도 덩어리진 먼지가 풀풀 날린다.
또 다른 상자 안에는 형광펜, 수성 사인펜, 유성 매직 등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괜히 하나씩 뚜껑을 열어 아직 나오는지 확인해 본다. 노랑 형광펜은 나쁘지 않다. 펜촉에 비비탄을 붙인 모양의 컴퓨터 사인펜도 잘 써진다. 의외로 수성펜이 건재하다. 필통에 0.3㎜ 일제 중성펜을 색깔별로 가득 넣어 다니는 게 자랑이던 시절이 있었다. 여기엔 그런 트랜디한 품목이 없다.
일곱 가지 색깔을 한 데 담은 볼펜과 용도 파악이 안 되는 필기구 몇 개를 더 만져보는데 문득 손끝 감각이 낯설다. 아버지다. 그의 감쪽같은 선물이 틀림없다. 예전부터 우리 집에서 사물이 오가는 일은 내가 너를 신경 쓰고 있노라는 표현이었다. 다만 몰래 갖다 놓아 본래의 뜻과 달리 사람 속을 뒤집어 놓았을 뿐이다. 썩 다정한 그림은 아니었지만, 우리 가족은 각자의 모양대로 서로를 꽤 의식한 것 같다.
하지만 그 의식이란 게 낯간지러운 사랑을 가리키는 건 아니다. 이 집 사람들은 가족이라기보다 뭐랄까. 도덕적 의무감이 추가된 동거인에 가까웠다. 약자에 대한 책임, 그리고 책임을 만들었다는 더 큰 책임. 대단한 행복도 특별한 불행도 없는 납작한 공간에서 적당한 구색을 갖추는 일이 유일한 규칙이었다. 아버지는 남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고 무던하게 지내는 몹시 평범한 생활을 바랐던 것으로 보였다.
나는 아버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측은함 같은 것일까. 미안하고 안타까운 골칫거리, 아니면 전생의 카르마? 어느 쪽이든 뚜렷한 기준 없는 관심은 들쭉날쭉 엇박자의 연속이었다. 방치하다가도 티 안 나게 채근하는 식으로 나의 숨통을 조여왔다. 고장 난 메트로놈 같은 그의 리듬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처음 몇 번 맞는가 싶다가 이내 서로를 탓하며 덜컹대는 널뛰기와 다르지 않았다.
“쓰레기봉투 더 사 와야겠다.”
“안방 한번 보고 다녀올게요.”
“네 방에서 벌써 다 썼어. 12시 전에 1차 끝내자.”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어정쩡하게 들고 있던 추석 선물 셑트 상자를 절반쯤 찬 쓰레기 봉지에 털어 붓는다. 모니터를 힐끗 쳐다본다. 34%. 내방은 어머니 출근 이후 마무리하기로 하고, 이제 아버지 차례다.
안방의 붙박이장을 뒤져 주인 잃은 것을 찾는다. 다 닳은 정장과 운동복, 구멍 난 명품 양말 등 몇 안 되는 옷가지들을 미리 준비한 마대자루에 옮겨 담는다.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초라하다. 옷은 그게 전부다. 서랍장 안에 우유갑을 오려 만든 양말통 뒤편으로 푸른색 무광의 질감이 보인다.
“저거 뭔지 알아요? 꺼내볼까요?”
“아아, 깜빡할 뻔했네. 그거 버려야 해.”
정육면체를 납작하게 누른 모양의 옛날식 우단 케이스다. 아래로 쓸면 진한 파랑, 위로 쓸면 연한 파랑으로 손자국이 남는 가짜 벨벳 천을 가지고 최대한 고급스러워 보이게 나무틀을 두른 것이다. 안쪽에는 매끄러운 가짜 실크 천이 크리스탈 감사패를 감싸고 있다. 처음 보는 것이다. IMF와 명예퇴직. 그때는 그냥 무겁고 어려운 ‘남 얘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감사패는 이것으로 끝이라는 고상한 통보다. 아버지의 이름 석 자조차 허락할 수 없다는 듯‘귀하’에게 주어진 이 물건은 다사다난한 20년 근속 역시 ‘그간’으로 퉁쳤다. 노고에 감사하다는 인사로 시작한 내용의 절반 이상이 앞으로의 건강과 행복의 기원이다. 조직도 인간관계와 다를 바 없다던데, 내 알 바 아닌 사람의 미래를 축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금은 없는 회사 이름이 가장 크고 멋지게 쓰여 있다.
“원망했겠어요. 난 몇 달 만에 잘려도 가서 확 불 지르고 싶던데.”
“말 좀 곱게 해.”
정말로 해코지를 한 적은 없다. 고용주의 입장도 이해한다. 꿇어올랐던 마음이야 때가 되면 사그라든다. 나 역시 쉽게 튕겨 나간 만큼 어렵지 않게 다음 일을 구할 수 있었다. 상식, 복지, 안정, 미래 따위의 기대를 땅속 깊이 맨틀쯤에 묻어두면 괜찮았다.
내가 아는 한 남의 돈을 버는 일엔 항상 급여보다 큰 헌신이 요구되었다. 말 그대로 일하고 움직이는 노동(勞動)이야 두말할 것도 없을뿐더러, 무한한 상냥함 더하기 적당한 어리숙함이라는 인간미도 추가되어야 한다. 그러니 상식적인 주장이나 권리가 묵살될지언정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머리로는 수긍하지 않더라도 빨리 마음을 비우는 편이 나았다. 너무 진심인 사람이 바보다.
그런 점에서 아버지는 전형적인 바보였다. 주 6일 근무가 보편이던 때였다지만 우리 집은 그 흔한 가족 여행 한번 다녀오지 못했다. 집안의 대소사가 있어도 휴가? 결근이란 세상에 없는 단어였다. 대신 가끔의 일탈이었을까, 종종 주말 교외에서 외식할 때 아버지는 조용히 각진 녹색병의 고량주를 드셨다. 나와 같은 반 덩치 좋은 기집애가 부장님 댁 늦둥이였나 뭐였나 하여 꼭 동네를 벗어났다.
어머니가 붙박이장 가장 깊숙한 곳에 있던 서류 가방 두 개를 가져온다. 정직한 직사각형이었을 가방의 모서리가 지독하게 닳아 있다. 손을 많이 탔을 만한 곳을 제외하고는 금속 부속들이 얼룩덜룩 검게 삭았다. 하나는 30년, 다른 하나는 10년 된 것으로, 비교적 덜 상한 쪽이 내가 선물했던 것이란다. 아버지가 아니라 내 기분을 위한 선물이었을 것이다. 둘 다 작년 말까지 교대로 사용되었다.
30년 된 가방은 그의 손길이 멎은 이후 완전히 망가졌다. 마치 잿가루를 뭉쳐 납작하게 편 것처럼 곧 바스러질 듯하다. 안에는 끝 선을 맞춰 반으로 접은 식당 전단이 들어있다. 여기저기 얼룩지고 염색이 다 빠진 가죽과 대조적으로 이 싸구려 인쇄물의 높은 채도와 과도한 장식이 돋보인다. 아버지는 생선 뼈를 발라 담을 종이 그릇의 재료를 습관처럼 챙겨오곤 했다.
안쪽 지퍼를 열고 가방을 뒤집어 턴다. 가방만큼 낡은 반지갑이 툭 하고 떨어진다. 지폐가 새로운 규격으로 바뀌면서 헐거워진 이 물건을 아버지는 계속해서 사용했다. 그는 깨끗한 천 원권, 오천 원권, 만 원권을 골고루 챙겨 위인들이 같은 면을 바라보도록 정리해서 가지고 다녔다. 재물을 부른다는 어른들의 미신 같은 것이었다. 신분증에 붙은 30대 아버지의 얼굴이 뭉개져 있다.
“다 버려요?”
“왜, 아까워?”
뭐라도 챙기고픈 마음이 들어서가 아니다. 기분이 묘했다.
“아버지가 절약하는 편이긴 했지. 그래도 꽉 막힌 구두쇠는 아니었어.”
“잘 모르겠네요. 옛날부터 뭐가 다 안 된다고만 해서.”
성인이 되어 직접 돈을 벌기 전까지 나는 우리 집이 찢어지게 가난한 줄로만 알았다.
“기억나니? 우리 집 예전에는 꽤 괜찮았다. 적금 이자만 해도 쏠쏠했어. 요즘이니까 대출 좀 받아 주십사 광고하고 전화하지, 돈 쥐고 있는 회사들이 아쉬울 게 뭐 있어. 그냥 저거 하는 회사 다니는 것뿐인데도 고기며 과일이며 넘쳐나서 이집 저집 경비실까지 줘버렸잖아. 엄마랑 몇 번 같이 간 적도 있어. 너 몇 살 때더라…. 그것까진 생각 안 나겠지?”
그랬다고 하니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일요일이었을 것이다. 사무실은 대체로 비어있었는데 드문드문 지나다니는 직원들이 아버지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아버지는 부하직원들 앞에서 그저 여유로운 미소를 띠었다. 나는 신이 나서 이곳저곳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가 그만 탄산음료를 엎지르고 말았다. 이상하게 그다음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회사 갔다가 무슨 일이 있었어요?”
“응? 언제? 왜?”
“뭔가 찜찜해서요.”
어머니와 나 모두 갸웃한다.
“글쎄다…. 별것 아니었나 보지. 그리고 문제가 생겨도 엄마를 잡지, 너한테 내색하디?”
아버지는 나를 어려워했다. 나는 그를 불편해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냥 그러고 있었다. 너무 오래되었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최근 어머니와 나의 대화는 어떤 주제로 시작하든 아버지 이야기로 끝이 났다. 다음 레퍼토리는 다소 피곤한 내용이라 나는 좀 전에 꺼냈던 감사패를 들고 슬쩍 일어난다. 이제는 서로 피곤한 분쟁을 피해 갈 줄 안다.
“케이스는 어떻게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크리스탈? 이건 무슨 쓰레기로 버려요?”
“알아서 해. 갖든가.”
아버지는 국문과를 나왔다고 했다. 무엇을 꿈꿨는지 모르지만,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아니 내가 아버지처럼-가치를 환산하기 어려운 전공을 선택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속사정을 알고 싶어 했던 적이 없다. 어디에 살고 어떤 일을 하는지와 같은, 초면에 으레 하는 질문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서류상 필요한 만큼만, 주민등록번호, 이름, 큰 분류상의 직업 정도. 처음부터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였다.
말로 담기에 복잡하고 어려울 뿐 그를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집에 나고 들 때마다 꼬박꼬박 인사는 했고, 짧은 대화 정도는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다. 차라리 결정적인 사건이 있어 원수처럼 척지고 미워하게 되었다면 이 불편함이 설명될 것이다. 어쨌거나 마음대로 오해해 버리고 싶지 않은데, 동시에 적극적으로 알아내고자 하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관계이지 않았을까 싶다.
“아버지 뭐 하셨는지 알고 있어?”
어머니가 다시 입을 뗀다.
“……. 회사 말이에요?”
“평소에 말이야.”
“알아야 해요?”
“너도 참….”
“아니 정말로. 알아야 할 만한 게 있는지 묻는 거예요.”
“알아야 할 만한 건 뭐냐 그럼?”
‘…이 지긋지긋한 삶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나요….’
이제는 물어도 대답할 사람이 없다. 마른침을 삼키고 시계를 쳐다본다.
“저 곧 출근이에요.”
“그래. 오늘 끝내려던 건 아니었으니까. 시간 괜찮으면 여기까지만 마무리해 줘. 나도 나가 봐야겠다.”
어머니가 모자와 장갑을 챙긴다. 봄 날씨치고 중무장이다. 지인이 운영하는 꽃집 일을 거들고 있다고 했는데, 그 이상은 묻지 않았다.
뚱뚱한 옛날식 TV 장식장을 열어본다. 20년도 더 된 골동품이다. 당시 사용하던 브라운관 텔레비전의 크기에 맞춘 것이다. 요즘은 비디오나 DVD 플레이어도 잘 쓰지 않아 받침용 가구의 깊이가 이렇지 않다. 오래전 전셋집을 전전할 때는 여기 아래에다 LP 판이나 페이지가 꽉 찬 통장, 오래된 바퀴 약 같은 것을 보관했던 것 같다. 이 집에서는 처음 열어본다.
각을 맞춰 정돈된 파일철이며 사진 앨범, 차곡차곡 쌓여 있는 운동화 박스를 보니 이쪽은 정리가 한번 된 모양이다. 물건의 종류별로 견출지가 붙어있다. 맨 아래층은 무게가 가장 많이 나가는 ‘기계류.’ 폴더폰부터 슬라이드폰, 터치폰과 스마트폰 등 휴대전화 공기계 및 해당 충전기, 보조배터리가 들어있다. 마침 모두 220v라 마음만 먹으면 전원을 켜볼 수 있다.
중간층은 ‘데이터류’다. 3.5인치 플로피 디스켓과 투명한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긴 CD-R, USB 메모리 몇 개와 외장하드가 있다. 손바닥만 한 수첩도 한 권 보인다. 안에는 여태 가입한 사이트의 아이디와 비밀번호, 보유 계좌의 정보가 또박또박 쓰여 있다. 페이지를 조금 넘기는데 빨간 색연필로 죽 그어진 것도 있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매달렸다는 PC 작업이 계정 삭제였나 보다.
박스 바닥에 종이가 여러 장 깔려있다. 반대편의 글자가 옅게 비친다. 들어있던 물건을 한쪽으로 옮기고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긁어내어 꽉 낀 종이를 끄집어낸다. 주민등록등본, 납입증명서, 진료확인서 등 규격이 A4인 서류들이 뒤집어진 상태로 보관 중이었다. 아버지의 가장 최신 정보로 채워진 이력서도 있다. 마지막 줄에 기재된 직장은 내가 알고 있던 그곳이 아니다.
이보다 아래에는 방금 서류들보다 작은, B5쯤 되는 원고지가 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전체적으로 누렇고 기름얼룩 같은 자국도 있다. 칸을 구분하는 녹색 선이 희끄무레하다. 쓰다 남은 것들을 모아놓은 백여 장 가량의 다발이다.
철컹! 밖에서 현관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안에 있지? 커피를 타 놓고는 보온병을 깜빡했어. 좀 갖다줘.”
“어어…. 신발 벗었으면 이것만 한번 봐주세요.”
“얼른 나가야 하는데…. 잠깐만.”
성큼성큼 발소리가 다가온다.
“원고지. 누구 거예요?”
“이게 여기 있었네. 아버지 거야.”
“아무것도 안 쓰여 있어서 어째야 하나 했어요.”
“본 적 없지? 너 있을 때는 한 번도 안 꺼냈을 거야.”
짧게 삐삣- 삐삣- 하는 경고음이 울린다. 빨랫감을 무리하게 욱여넣은 탓에 세탁기가 멈춘 것이다.
“허구한 날 꺼냈어, 이 원고지. 일기라도 썼나 슬쩍 보면 노발대발이었는데 네 아버지 참 징글징글한 사람인 게 그걸 국수 가락처럼 잘게 오려서 내놓더라. 아무튼 네 마음대로 해라. 나간다.”
다용도실에서 희미한 탄내 같은 게 난다.
어머니는 성실하고 꾸준한 아버지의 모습에 결혼을 결심했다. 결벽증 같은 행동들이 깔끔하고 좋아 보이던 때. 사내 커플이었던 두 사람은 여느 직장이 그러했듯 부부가 되면서 한쪽이 일을 관둬야 했다. 그러나 회사에 나가지 않는다 뿐이지 집에서 아버지를 보조하는 업무는 계속되었다. 안 보이는 곳에서 능률을 높여주는 일, 잔손이 덜 가도록 더 많은 손을 쓰는 일 말이다.
예를 들면, 정해진 위치에 실수 없이 도장을 찍을 수 있도록 보조 용지를 오리거나 여백 계산을 잘못해 출력 단계에서 잘려 나간 표를 완성하는 자질구레한-하지만 직장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도맡은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버지의 물건들의 사연을 잘 알고 있다. 나중에는 나 또한 보조의 조수가 되었다. 중국집 외식에서 돌아와 한두 시간 가위질하던 게 아버지와 보내는 휴일이었다.
부모가 자녀의 방학 숙제 때문에 애를 먹는 일은 다반사라고 쳐도, 반대 경우는 얼마나 될까. 알 수 없는 이유로 아버지의 자리가 위태로워지면서 보조와 조수의 업무는 누군가에게 건넬 선물 포장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우리 가족 모두 손을 놀리게 되었다. 한참이 지나 학교에서 1997년도의 외환위기를 배우고서야 어머니와 나의 일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가장의 비참한 마음을 추측할 뿐이었다.
아버지는 어디서나 ‘지독한 노력파’였다. 어머니는 옛 시절을 진심이 통하던 때라고 회상한다. 그의 남다른 출신 탓에 회사 동료들은 썩 호의적이지 않았다고 했다. 직장생활은 알아서 해야 할 일투성이였고, 누구라도 눈에 띄게 뛰어나기란 불가능했다. 무리에 묻어가기라도 하려면 안 보이는 곳에서 치열한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어머니와 내가 거들었던 일이 그런 종류였던 것 같다.
그의 노력과 희망은 IMF 이후 완전히 무너졌을 것이다. 그래서 두 번째, 세 번째 직장을 거치며 아예 투명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언제라도 대체될 수 있는 아무개 씨가 되어 남들이 하던 대로 딱 그만큼만 움직이는 한편, 기준에서 벗어나는 일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그것이 가족을 위해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작 본인의 삶에 소홀했던 한없이 평범한 아버지. 안타깝게도 내가 그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20151122
평범한 순간
오후 7시 20분. 저녁을 먹어 볼까 해서 나왔다. 빈속이 요동치지만 마음은 평온하다. 센텀시티에서 6시에 일이 끝났다. 식사하고 가라는 걸 한사코 거절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밥을 먹었으면 밥값을 해야 한다. 빠져나오지 못했다면 술 수발이라도 들게 될 것이었다. 오늘은 안 주고 안 받기로 했다. 모래사장을 따라 걷는다. 11월 끝 무렵에 가을 정취를 상상하다니. 바닷바람이 거칠다. 춥다.
지난달에 챙겨온 옷으로는 어림없다. 급한 대로 외투를 산다는 게 자꾸 타이밍을 놓쳤다. 그래서 뜻하지 않게 혈기 왕성한 차림으로 새 계절을 맞이하는 중이다. 유일한 외출복인 후드티를 걸쳐 입고 양쪽 어깨가 맞닿을 듯 잔뜩 웅크린 채 번화가를 배회한다. 교복처럼 매일 입어서 한껏 닳고 얇아진 상태다. 하루만 참으면 되는데... 해변에는 커플도 갈매기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폭죽놀이는 오늘 쉬어가나 보다.
마지막 밤이다. 내일 자 고속버스를 예매해 두었다. 숙소는 카지노가 있는 호텔과 대형 횟집을 한참이나 지나 불빛이 띄엄띄엄해지는 곳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제법 걸어야 한다. 걷다 보면 웬일인지 목적지에 도착해 있어 썩 마음에 드는 산책 코스이기도 하다. 해안선의 끝과 끝은 완전히 다른 동네다. 숙소의 반대쪽은 소위 부촌이라 불리는 곳이다.
오한이 들어 어디든 들어가려던 차, 몇 번 말만 들었던 베이커리가 떠올랐다. 백화점 홍보팀 직원들끼리 나누던 대화에서였다. 이름이 뭐였더라. 스마트폰 지도 앱에 적당히 검색하니 알아서 최상단에 추천 맛집으로 나왔다. 운이 좋으면 마감 할인 같은 게 있을지도. 아, 아니다. 가장 이름이 길고 비싼 것을 사야겠다. 원래 선물은 아끼는 게 아니라고 했다.
푸석해진 양쪽 뺨과 턱이 따끔거린다. 서울에 있을 때보다 행색이 나쁘다. 하루 만에 고생한 티를 지우기에는 늦었다. 사실 시간도, 돈도 여의치 않다. 급여는 최소 몇 주는 지나야 들어올 것이다. 퇴근길에 한두 캔씩 홀짝였던 맥주와 컵라면 한 달 치만큼 통장 잔고가 줄어 있다. 맞은편에서 양손 가득 빵 봉지를 든 사람이 걸어온다. 옳게 찾아왔나 보다.
하아... 바지 호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린다. 퉁퉁 부은 손가락이 잘 구부려지지 않는다.
ㄷㅂㄹ
돈벌레.
입금 전까지는 반드시 받아야 하는 전화다.
“네, 말씀하세요.”
“그래, 준비는 다 했고?”
바깥 소음이 들리지 않도록 급히 전화기 아랫부분을 감싼다.
“하는 중입니다. 필요하신 게 있나요?”
“아냐 인마.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여기저기 따라다닌 것도 그렇고... 제대로 못 챙겨줘서 미안하다.”
“괜찮습니다. 서울 올라가서 찾아뵙겠습니다.”
“어쭈. 끊으려고 하네. 어디야? 우리 좋은 데 갈 건데 잠깐 놀다 가.”
앙다문 어금니에 더 힘이 들어간다. 내가 무슨 답을 하든 상관없었을 상황이다.
“하하. 괜―찮습니다.”
“알겠다. 지갑에 밥값 넣어놨어. 든든하게 챙겨 먹고 잘 지내라. 또 보자.”
“넵, 감사합니다. 들어가세요.”
달갑지 않은 통화를 끊고 뒷주머니에 찔러둔 지갑을 꺼낸다. 곧 청구해야 할 하얀 영수증만 빼곡하다. 그 사이에 두 번 접은 오천 원짜리가 보인다. 여긴 사방에 널린 돼지국밥이 칠천 원인 2015년의 부산 해운대다.
나의 고용주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다. 덕분에 많이 배웠다. 단지 본인만 1990년대에 살고 있는 사실을 모를 뿐이다. 안 되는 것을 되게 만드는 게 능력이고 자랑이었다. 한 번의 굴욕적인 거래가 더 큰 기회로 이어질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해 함께 일했던 선우, 지형이, 희수 모두 굴욕을 나눠서 지고 거절을 삼키며 버텼다. 차마 오지 않는 기회를 함께 기다리며.
같은 로고의 봉지를 든 무리 몇을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따뜻한 톤의 조명 아래 매끈한 대리석 바닥이 더 반짝인다. 입구 정면의 기다란 쇼케이스 안에 알록달록한 조각 케익과 마카롱이 줄지어 있다. 가게의 중앙부는 주재료의 종류나 조리 방법에 따라 진열된 다채로운 빛깔의 빵이 가득하다. 잊고 있던 허기가 몰려온다. 쟁반과 집게를 쥐는 손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예상은 했지만 모양만큼 가격도 도발적이다. 어느 베이커리에나 있는 단팥빵이 가격은 곱절이다. 식빵 종류는 얼추 백반 한 상 값. 가격도 가격이지만 대충 끼니를 때울 목적이 아니다 보니 더 신중하게 된다. 최소 대여섯 시간 이동하는 동안 모양이 일그러지지는 않을까, 옹졸한 마음 씀이라고 실망하면 어쩌지 생각하며 몇 바퀴나 돌아본다. 제조실에서 배꼼 고개를 내민 점원들이 웅성거리는 게 보인다.
‘어머 어머 지금 맨손으로 만진 거 아니에요?’
‘계속 지켜보다가 들고 도망가면 바로 신고해!’
불안과 적의에 찬 말들이 나를 향한 것을 알고 있다. 한두 번 겪은 상황도 아니지만 뒤숭숭한 이 마음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는 단지 간신히 퇴근한, 피곤한 노동자일 뿐이다. 잠시 지저분할 수는 있어도 이곳에서 나의 입장은 그들이 걱정할 만한 일을 저지를 리 없는 관광객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찾으시는 제품 있으세요?”
“아, 아뇨. 그냥 좀 볼게요.”
“식사 빵으로는 저쪽에 깜빠뉴나 치아바타 많이 찾으시고요, 뭔지 잘 모르시면….”
빨리 내보내려는 것이다.
“알아서 볼게요.”
이렇게 끊지 않으면 나만 더 힘들어진다. 일하면서 지겹도록 겪었다. 우리 팀은 어디에서도 배려를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보랏빛으로 달아오르는 얼굴을 푹 숙인 채 진열대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카스테라 한 봉지를 황급히 든다. 내가 무슨 마음으로 이 가게에 들어왔고, 통장에 얼마가 있으며 그 하찮은 돈을 벌기 위해 어떤 경쟁으로부터 살아남았는지, 또 그런 자식새끼를 기른다고 부모는 얼마만큼의 모욕을 견뎌왔는지 읊어주고 싶었지만 생각에 그친다.
“결제금액 구천팔백 원이시고요, 비닐봉투 100원 추가되세요.”
빵은 죄가 없다. 서둘러 계산하고 나와 휴대전화로 가게 리뷰를 검색한다. 만점에 가까운 별점 아래로 수천 건의 사진이 주르륵 펼쳐진다. 커피잔과 꽃병, 각종 소품과 친구 얼굴까지 동원해 더 맛있게, 더 행복해 보이게 세팅한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위안이 될 만한 게시물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벽을 두고 알아서 돌아선 나는 이미 졌다.
많은 사람이 이쪽 일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 나 역시 그랬다. 당장의 생존 문제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천박한 현실 따위 입에 담을 필요 없는 우아한 지성인을 꿈꿨다. 부모님도 그런 것을 바랐다. 자기들처럼 고생하지 않고도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 하지만 기회의 민낯은 어김없이 추악해서 순결한 성취란 불가능했다. 다른 모든 일들과 마찬가지로.
요즘엔 제발 무슨 자격증이라도 따 보라며 힘닿는 데까지 지원하시겠다는데, 그간의 시간과 노력이 조금 아깝지만 용기 있는 손절은 더 나은 삶을 펼쳐줄 것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그냥 돈 버느라 바쁘고 찾는 이가 많다는 핑계로 집을 나서는 게 최선이었다. 그래서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숙소에서 나올 때보다 돌아가는 길이 훨씬 멀게 느껴진다. 평일 저녁이라 그런가 노점들이 일찌감치 천막을 접고 있다. 착잡한 마음에 뭘 먹고 싶지 않다. 시원한 맥주도 필요 없다. 어머니가 끓여주신 오징어 뭇국과 흰쌀밥이 간절하다. 집안에 폭풍우가 그치면 이내 갓 지은 밥 냄새가 퍼지곤 했다. 무얼 위해 아등바등 살아야 하나 한숨이 난다.
20151123
아무 일도 없었다
어제와 비슷하다는 일기예보가 부디 맞기를 바랐다. 굵은 눈발이 고속버스 창문을 툭툭 친다. 새벽부터 축축하고 무거운 한기가 느껴진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꽤 큰 입자의 눈송이가 날린다. 일을 마치고 긴장이 풀린 탓일까 전날보다 팔다리가 더 무겁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곧 땅속으로 끌려 들어갈 것만 같다. 히터 바람에 몸이 녹아 추욱 늘어진다. 때 이른 벚꽃놀이처럼 찾아온 올겨울 첫눈이다.
일정이 바뀔까봐 조마조마 하면서도 조금이라도 편한 우등 버스를 선택한 나는 뒷좌석 할인에 혹한 나머지 27번 좌석 그대로 정직하게 앉아 도로의 갖은 요철을 체험하는 중이다. 열명도 안되는 승객이 띄엄띄엄 보이는데, 빈 좌석이 훨씬 많다. 오늘은 대탈출의 날이다. 바닥의 질감 말고 다른 것을 생각하자.
기약 없던 출장이 끝나고 드디어 서울로 돌아간다. 이번 건을 끝으로 다시는 몸을 갉아먹는 일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일생에 주어진 건강을 많이도 당겨썼다. 잘 버텼다. 몸에 진 빚은 천천히 갚아나가면 된다. 간밤에는 제시간에 일어나지 못할까봐 걱정하며 새우잠을 잤다. 다행히 여유있게 나와 따뜻한 아메리카노도 한 잔 마셨다.
말이 좋아 출장이지, 출퇴근과 휴식 시간마저 살뜰히 줄이려는 지독한 현장이었다. 같은 브랜드의 전국 매장을 동일한 컨셉으로 장식하는 업무였는데, 대구와 마산, 김해를 거쳐 마지막으로 부산까지, 농담 반으로 백화점 투어라고도 했다. 물론 기꺼이 돈을 쓸 준비가 되어있는 고객님들과 우리는 출입구부터가 달랐다. ‘을’을 가뿐히 지나 병, 정쯤, 그리고 잠재적 범죄자이기도 한 우리는 서약서에 사인을 하고 신분증을 맡겨야만 입장할 수 있는 밑바닥 노동자였다.
전국의 모든 S백화점 시즌 디스플레이는 메인 컨셉 하에 일괄 진행된다. 매장 여건에 따라 사이즈나 개수에 조금씩 차이가 있을 뿐 메인이 되는 작품은 정해져 있다. 그래서 시간이든 진짜 비용이든 가장 경제적인 방법을 찾아내면 반복해서 찍어내기만 하면 된다. ‘크리에이티브’와 ‘유니크’를 철칙으로 하는 발주처의 요구와 대조적인, 철저한 수직 구조의 업무 시스템이다.
그래서 다행인지 뭔지, 여기서는 사소한 실수에 좌불안석하거나 건방지게 나설 필요가 없었다. 나의 책임은 이 몸 하나 건사하는 것 뿐. 싸구려 모텔에서 매일 아침 사지를 주물러가며 치약을 듬뿍 얹은 칫솔을 입에 물면 오늘도 해가 떠 ‘버렸구나’ 하며 꾸역꾸역 하루를 시작했다. 약품이 묻고 용접 불똥이 튀어 구멍 난 상의는 아무리 깨끗하게 빨아 입어도 궁상맞았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뜯어내고 희망찬 새해를 덧씌우는 업무에서는 직전 구조물이 얼마나 허술하고 빈약한지를 최대한 감추며 얼핏 비슷해 보이는 질감의 오브제들로 재빨리 교체하는, 전문가스러운 연기가 필요했다. 한편 클라이언트를 위한 서비스로, 특정 직업이라 정의하기 어려운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에 투철한 사명감과 프라이드를 보여주는 것 또한 중요했다.
더는 전공과 무관해 보이는 이 일을 좋아서 한다거나 돈을 벌기 위해라는 이유로 설명할 수 없다. 통장 잔고의 백만 원단위 한번 바꾸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이번처럼 바짝 당겨서 벌면 세네 번에 나눠 입금이 되었는데, 그 돈을 만지기 전 몸져 눕거나 목돈 나갈 일이 반드시 생기기 마련이었다. 일당 7만 원. 1일=24시간. 법정 최저시급은 5,580원이다.
한 달 동안 두어 차례 사고가 있었다. 대수롭지 않은 일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당사자인 나조차도. 눈앞에 벌어진 작업 현장을 해치우고 다음 장소로, 예정된 스케줄대로 이동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피는 닦으면 되고, 멍도 언젠가는 없어진다. 팔꿈치가 퉁퉁 부었고 손등에 꽤 오래 갈만한 화상 자국이 남았지만 어쨌거나 움직일 수 있으면 출근하는 것이었다.
불가능한 일정과 견적을 수용한 대신 일꾼들의 인간다운 삶이 생략되었다. 식사는 하루 두 끼, 흡연자가 아니면 중간에 쉬는 시간도 없었다. 어마어마한 지체 부담금을 두고 사장ㄴㅁ은 앓는 소리와 협박으로 강행군을 지속했다. 아무도 계약서를 만져보지 못했다. 책임자와 담당자가 계속해서 바뀌었다. 확실하게 고정된 위치는 가장 아래, 나와 같은 무리였다.
당분간 내가 어디에서 무얼 할 지 중요치 않을 것이다. 다시는 여기를 찾지 않아도 된다. 길고도 짧은 시간 한 달. 그세 눈을 덮을 정도로 머리카락이 자라고 신경 쓰지 못한 만큼 피부가 거칠어졌다. 자식 놈의 추레한 몰골을 본 부모님의 가시 돋친 말이 눈에 선하다. 속상한 마음에서라는 걸 안다. 나쁘지 않은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챙긴 선물이 이 카스테라다.
서산휴게소에서 잠깐 쉬었다 간단다. 절반쯤 왔나 시계를 본다. 눈에 띄게 해가 짧아져서 벌써 한밤중이다. 서울까지 앞으로 2시간 남짓,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가는데 한 시간. 아직 갈 길이 먼데 휴식시간 20분은 꽤 긴 텀이다. 마땅히 할 일도 없고 마구 굴리던 몸을 얌전히 두려니 좀이 쑤셔 나가본다. 부산에서부터 쭉 이어져온 하늘이 유독 짙고 찡해 코가 아린다.
문득 이름도 낯선 이 지역이 한국이 아니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버스에서 잠깐 눈을 붙인 사이에 캐나다 퀘벡 지방 어디쯤으로 순간이동한 것이다. 숨 쉬는 것을 제외한 움직임 하나하나가 낯설고 도전인 남의 나라에서 이 정도면 기특한 생존이다. 비슷한 간판들을 넋 놓고 보다가 걸어온 방향이 잠시 헷갈린다. 방금 지나온 호두과자 가게를 찾는다.
두 번째 짧은 잠을 청하니 이내 동서울터미널에 도착이다. 버스가 주차장을 크게 도는 동안 나를 제외한 모든 승객이 이미 일어서있다. 옆자리에 안전벨트까지 채워 앉힌 백팩을 들고 일어난다. 팔천백 원짜리 빵 봉지도 챙긴다. 한 일 없이 피곤한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뭘 먹을지 조금만 더 힘을 낼지 잠깐 고민하다 2호선 개찰구를 통과한다.
오랜만에 이용하는 서울의 대중교통은 스마트폰을 처음 만질 때처럼 낯설고 설렌다. 모든 벽면이 현란한 불빛과 그림, 글자로 빼곡하게 차 있다. 서울은 땅값만큼 벽도 천장도 비싼지 허투루 두는 공간이 없다. 각종 안내판에 하지 말라는 게 참 많다. 혹시 모를 불만을 토로할 연락처까지 꼼꼼히 표기되어있다. 사방으로 사람에 치이는 게 예전만큼 불쾌하지 않다.
남은 역이 줄면서 여러 가지 감회가 교차한다. 강을 건너고 깜깜한 터널을 지나 다시 땅 위로. 막차에 가까운 시간, 짙은 피로의 호흡들과 함께 그간의 기억을 더듬는다. 그 이전의 또 다른 시간도. 여태 무수한 갈림길에서 크게 반대를 사거나 실패하지 않은 것은 나의 뿌리가 아직 어딘가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다 하다니, 철들었다는 소리를 듣겠다.
길음역을 나와 8차로 횡단보도를 건넌다. 다들 어쩜 그리 바쁜지 여태 붉은 점들이 줄지어 있다. 낯익은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월요일인데 집 앞 슈퍼는 벌써 셔터를 내렸다. 11시 53분. 공복이 길어져서 좀 전에 길 건너 시장통을 슬쩍 봤다. 그냥 보기만 했다.하루라도 일찍 내 방 내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뭉근한 피로가 온 몸을 적시고 늘어진다.
151124
( ) 버리는 날
현관문의 번호키가 낯설다. 숫자가 재깍 생각나지 않아 손가락의 움직임을 지켜본다. 의식하면 동작이 부자연스러워진다. 달칵. 손잡이가 이미 헐거운 상태다. 문단속 좀 잘 하시라니까. 신발장 앞에 가방을 내려놓고 조용한 집안을 쳐다본다. 복도를 지나 좁은 시야각에 걸리는 풍경은 촌스러운 몰딩 색깔이며 깜빡깜빡하는 형광등까지 스윗홈이 맞다.
“저 왔어요!”
……
분위기가 묘하게 다르다. 이런 느낌은 샅샅이 훑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어색한 냄새와 기류. 집안 공기 중 나의 지분이 줄어서일까. 조심스럽게 워커를 벗는다. 회색 양말의 발끝이 조금 젖어있다. 의식적으로 숨소리를 줄인다. 차라리 처음 보는 인물이 당황한 표정으로 나와 주면 좋겠다.
거실등의 초크다마에서 지잉 지잉 소리가 들린다. 그 아래 갖은 세간살이가 산을 이루어 쌓여있다. 유행 지난 통바지며 숨죽은 파카, 십 수 년 전 내 교복도 보인다. 전공서적과 만화책, 졸업앨범, 90년대 인기 가수의 카세트테이프, 수많은 클리어파일과 크로키북… 다시는 꺼낼 일 없을 것처럼 깊숙이 숨겨뒀던 옛날 장난감까지, 전부 내 손을 거쳐 간 것들이다.
뒤꿈치를 들고 주위를 천천히 둘러본다. 그러고 보니 벽에 걸어두었던 액자가 죄 사라지고 없다. 기가 차지만 사람이 한 것이 분명한, 다분히 의도적인 연출은 오히려 괜찮다. 번거로워도 물건이야 정리하면 그만이다. 일단 이 찝찝함의 다른 원인을 찾자. 그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 문. 방문이 하나도 없다. 화장실, 안방, 다용도실, 내방 모두.
오래되어 조금씩 어긋나는 집안 구석구석들을 나름의 방법으로 돌보는 일은 나의 담당이었다. 웬만한 변화는 직접 계획했거나 남의 손을 타더라도 예상 가능한 범주였다. 그런데 이 상황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임시적 상태라고 할 수도 없는 게 경첩이 달려있던 문틀의 나사못 자국까지 완벽하게 메꿔져 있다. 사람은 어디에? 엄습하는 불길함이 발을 재촉한다.
녹은 눈이 스민 양말로 바닥에 쿵쿵쿵 도장을 찍는다. 황급히 부모님을 찾는다. 뽀얗게 김서린 자국이 미처 사라지기도 전 방금 지난 방향으로 다시 돌아온다. 자, 침착하게 생각을 해보자. 현관문이 열려있었다. 몸싸움의 흔적은 없다. 이런, 전화를 걸면 될 것을. 평소 통화를 거의 못했지만 돌아오는 날짜만큼은 인이 박히게 일러두었다. 그래서 열두시를 안 넘겼는데!
그 때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아버지가 반만 열린 현관문 앞에 서 있다. 센서등이 작동하지 않아 어둠 속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보이는데 바깥바람에 반 박자 늦은 소주 냄새가 떠밀려온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입을 떼려는 차 어머니가 뒤이어 들어오며 손사래를 친다. 무사함에 안도하면서도 일단은 방에 들어가라는 신호가 상당히 의심스럽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겨를도 없이 뒤늦게 들여다본 내방은 더 가관이다. 옷장이고 책상 서랍이고 물건을 다 토해낸 마냥 엉망이다. 의자 다리가 부러지고 커튼은 뜯겨있다. 거실보다 심각하다. 양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집을 비운 사이 고작해야 거미줄이나 곰팡내 정도를 생각했다. 이것은 반칙이다. 이 집에서 나를 제거하려는 기습이다. 화도 나지 않는다.
아주 어릴 때까지 기억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는 분명 점잖은 사람이었다. 국민학교 같은 반 친구에게 먹물을 끼얹었을 때나 중3 수학여행에서 만취상태로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 전학 간 고등학교에서 앞니가 나갈 정도로 한 학년 위 선배와 치고 박고 싸웠을 때 모두 그 흔한 체벌 한번 없었다. 한 달 내내 새로운 반성문을 쓰긴 했으나 그게 전부였다.
손에 꼽을만한 사건 외에 나는 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름 열심이었다. 진학 문제를 두고 약간의 진통을 겪었지만 그쯤은 별 일 아니었다. 나의 생활은 꾸준히 아버지의 복사본이었다. 그가 몸소 실천한 검증된 방법을 안전하게 따라가면 되었다. 성적이야 노력한 만큼 나와 주지 않는 게 당연했는데, 너무 튀어도 좋을 게 없다 하여 그런 쪽의 압박이 남들보다 덜했다.
아버지는 집이라고 해서 흐트러지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일을 쉬는 동안에도 칼같이 정해진 시간에 기상했고 절제된 식사와 최소한의 음주, 규칙적인 등산으로 호리호리한 체격을 유지했다. 옷차림은 상-하의가 부조화를 이룰 때가 많았으나 깨끗하게 빨고 먼지까지 탈탈 털은, 한결같이 단정한 모습이었다. 그런 사람의 성격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니 지금과 같이 처음 보는 광경에 어떻게 반응하고 무엇을 생각해야할지 도저히 모르겠다. 얼마나 대단한 죄가 있어 이토록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나. 하필 오늘! 나는 계속 부재중이었다. 현재의 나는 엎질러진 물 잔의 목격자일 뿐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물으면 답이 있을까. 어머니는 나를 슬쩍 들여다보는가 싶더니 영혼까지 끌어낸 한숨을 뱉고 돌아선다.
여느 집들이 그러하듯 장성한 자식과 부모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합이 0인 것과 애초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숫자 0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감정적으로 수식이 성립하지 않았다. 어떤 반응을 일으킬 분자가 없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서먹해도 별스러운 사건이 생기지 않았다. 동거인의 에티켓으로서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각자의 영역을 지켰다.
그런데 그간의 평화협정이 황망하게 깨진 것이다. 나는 뒤늦은 사후처리 대신 담담히 짐을 싸는 쪽을 택한다. 여행을 갓 마치고 지칠 대로 지친, 아직 풀지도 않은 백팩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되는대로 옷가지를 주워담은 쇼핑백을 챙겨 집을 나선다. 당장 갈 곳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어디가 되었든 더 이상 이곳은 아니다. 나의 존재가 허락된 곳이 하나 또 사라졌다.
불행의 형태는 무궁무진하다고들 하던데, 더욱이 예술쟁이라는 나는 얼마나 창의적인 형태로 부모의 속을 할퀴어놓았을까. 비전 없는 직업부터 한심한 주변 인물들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을 것이다. 가장 좋은 것으로만 먹이고 키워온 데 대한 배신감을 이해한다. 그러나 분노를 조준하면 안 되었다. 구획이 사라진 집안 어느 좌표에 짜부라진 빵 봉지를 툭 던진다.
20180104
표준의 탄생
“한 학기 동안 수고 많았고, 사람 일은 도장 찍기 전까지 장담할 수 없다고 하죠? 어디서든 웃는 얼굴로 만납시다. 수업 끝!”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십여 명의 학생들이 우르르 미술실을 빠져나간다. 색종이 조각과 물감 닦은 휴지가 널브러져있다. 사실 머리카락 떨어진게 훨씬 많다. 빗자루가 다섯 개나 있는데 오늘도 내 손은 둘 뿐이구나.
빔프로젝터 리모콘의 전원버튼을 두번 눌러 화면을 재우고 컴퓨터 본체에 꽂은 외장하드 케이블을 분리한다. 나도 고생이 많았다. 오늘은 어머니와 함께 수고주를 들어야겠다. 3월 새 학기가 시작할 때까지, 아니다 정말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써서 정리를 해야한다. 2월 초에 구인 공고가 새로 뜰 것이다. 그동안 잘 했든 못했든.
내가 선생님이라니. 서류상으로 ‘기간제 강사’가 정식 명칭이지만 나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요즘 어머니나 친구들과 통화를 하면 첫 마디가 “어이~ 박선생~”이다. 몇 년 전에는 왜 이 일을 몰랐을까. 엄두를 못 냈던 게 맞다. 교사라 하면 모름지기 인격적으로 완성된, 뭐 하나라도 본받을 만한 어른이어야 되는 줄 알았다.
두고두고 후회할 가출과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암 선고. 예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정신머리 없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설명하기 어려운 직업이 세 글자로 줄어든 게 참 다행스럽지만 속사정이 비슷하다는 건 비밀이다. 수업 종이 울린다. 다음 교시가 시작되기 전에 빨리 나가야 한다. 뭘 흘렸는지 앞줄 책상이 지저분하다. 맨손으로 급히 쓸어낸다.
제대로 잠그지 못한 가방을 움켜쥐고 도망치다시피 나온다. 또 출석부를 깜빡해서 냉큼 다녀온다. 6교시는 2시 50분에 끝나는데 어정쩡한 시간이라 점심도 저녁도 먹지 못한다. 하긴, 이렇게 벌고 밖에서 밥까지 사 먹으면 남는 게 별로 없다. 지하철역 앞 편의점에서 두유 한 병을 산다. 찔끔찔끔 마시는 것보다 한 번에 털어 넣는 편이 허기를 달래는 데 나았다.
이 학교는 거리가 꽤 멀지만 환승하지 않고 앉아갈 수 있어서 다닐만하다. 정확히 남들 출근시간인 8시에, 그것도 동대문 역사 문화공원에서 갈아타고 가야 하는 학교는 수업에 들어가기도 전 이미 지쳐버렸다. 매주 월, 수, 금요일 아침 일곱 시에 기상하면 어머니도 함께 일어나 어제의 식사를 따뜻하게 데웠다. 우리 집에 규칙적인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재작년에 독립해 나온 반지하 투룸은 재건축이 결정되어, 1년이 채 안되었을까 용달비 조금만 지원(?)받고 쫓겨났다. 그래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집에 집기류가 2배로 늘었다. 한 푼 두 푼 모아 산 그릇과 전자레인지, 전기밥솥이 본가에 있는 것과 똑같은 모델이라 적잖이 놀랐다. 가장 많이들 구입하는 것, 쉽게 보충하고 처분할 수 있는 것. 기준은 그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소득 없는 공모전을 포기하고 교사 일을 시작한 것이나, 평생 희생의 반의 반도 보상받지 못한 아버지의 암 선고 모두 당시에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미래였다. 매 순간 정직하게 노력하지만 기다렸다는 듯 불쑥 튀어나오는 돌발에 준비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버지의 보험은 그의 병을 막지 못했다. 내가 쌓아온 포트폴리오도 휴지조각이 되었다.
어머니는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자신이 특별해지기를 원하지만 절대 그럴 수 없다고. 계획과 바람은 다른 단어라고. 그래서 아버지는 평균적인 꿈과 남들이 다 수긍하는 표준으로 눈을 돌렸는지 모른다. 인생의 체크리스트를 하나씩 처리하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현실과 이상의 깊은 괴리에 좌절한 나와 젊은 시절의 아버지가 겹쳐진다.
“다녀왔습니다.”
“오늘은 바로 왔나 보네? 저녁 먹기는 이른 시간이고. 이제 제발 청소 좀 하지 그래?”
“물건이 많아서 그렇지 다 정리한 겁니다, 저게.”
내 방은 그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망가진 것만 적당히 치웠고, 나름의 질서라고 주장하지만 뭐가 어디에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른다.
“그러면 오랜만에 집에서 버섯전골 해 먹을까?”
“버섯 오래된 것 있어요?”
“말 참 예쁘게 한다. 날 밝을 때 나가서 소주 두어 병만 사 와 봐. 너 소주는 마실 줄 아니?”
“안 그래도 마지막 수업 해가지고 한잔 들까 했어요.”
나는 아직 해맑게 심부름을 다니는 이 집 막내이자 첫째고 가장이다.
단지 내 나무 그늘에만 쌓인 눈이 그대로다. 오른손에 든 검은 봉지에서 소주병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청량하다. 현관에 이미 멸치육수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입에 침이 고인다.
“거들 것 있어요?”
“엄마가 알아서 할게. 한 20분정도만 너 할 일 하고 있어봐라. 아 참,아버지 원고지. 글은 잘 돼가?”
“지금 막 다 썼어요.”